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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명구"의 글 태그

人須有爲己之心, 方能克己. 能克己, 方能成己.

사람은 모름지기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자기를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자기를 이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다. – 전습록. 왕양명

노익장은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더욱 좋아지거나 또는 그런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다.

마원은 후한시대의 명장으로 각 지역의 반란을 평정하고 국경을 안정시키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가 명성을 얻은 것은 쉰이 넘어서였는데, 나이가 많다고 물러서는 법이 없었으며 오히려 어려운 일에 자원하여 활약했다.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중얼거린 말이
“무릇 대장부는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이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바로 노익장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의 뜻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서 어떤 결과를 얻어 내기에는 늦었다.’의 의미와 통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기쁨과 배워가는 과정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에게 늦은 나이란 없다.

노익장.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분명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物盛則必衰 만물은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고,
有隆還有替 일어남이 있으면 다시 폐함이 있나니,
速成不堅牢 빨리 이룬 것은 견고하지 못하고,
亟走多顚躓 빨리 달리면 엎드려지는 일이 많은 것이다.
灼灼園中花 곱게 빛나는 정원 속의 꽃은,
早發還先萎 먼저 피면 도로 먼저 시들고 마는 것이다.
 – 경계의 글. 소학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남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면 원망이 있을 수 없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남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평소대로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천명을 기다리지만, 소인은 위험을 무릅쓰며 우연한 행운을 바란다.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上不怨天 下不尤人. 故君子居易以俟命 小人行險以琺幸.

군자는 자기에게 있은 후에 남에게서 구하며 자기에게 없게 한 후에 남을 비난한다.
君子有諸己 而後求諸人 無諸己 而後非諸人 – 대학

군자란 자기가 실천하는 것을 남에게 권하고, 자기의 단점을 없애고 남을 비난한다.

‘소소한 것을 쌓는 것이 빨리 이루는 방법이다’는 뜻으로 작은 일이라도 매일 실천함으로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작은 일은 자주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매달리는 날이 많아 쌓이는 성과가 크다. 큰 일은 드물게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매달리는 날이 적어 쌓이는 성과가 작다. (小事之至也數 其縣日也博 其爲積也大. 大事之至也希 其縣日也淺 其爲積也小) 그러므로 공적과 명성은 작은 일들을 잘 이루어 가는 사람이 더욱 빨리 성취한다. (積微者速成)

순자에 나오는 말이다.

작은 일이란 부담없이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바쁜 일과 중 짧은 짬으로 할 수 있을만큼 작은 일이다. 큰 일은 한 번 하기에 버거운 일이다. 준비가 필요하고 따로 시간도 내어야 한다.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이지만 꾸준히 실천하면 그 성과는 놀라울 것이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어내는 놀라움이다. (水滴穿石)

작은 일을 실천 하지도 않으면서 시시하게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미련함은 피하라. 시시해 보이는 일도 쌓아가다 보면 반드시 가속력이 붙는다. 처음 작은 걸음도 힘이 붙기 시작하면 성큼성큼 갈 수 있다. 요령이 생기고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점점 붙어 가는 까닭이다.

그러니 쓸데 없는 공상이나 걱정은 접어두시고 시시하게 생각했던 그 일을 당장 시작하자. ㅋ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소확행은 각자의 취향따라 다르겠지만, 누구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거리가 있다.

우리 와이프는 아이들과 나까지 모두 잠들고 고요해진 거실에서, 그리고 티비는 예능 프로도 좋고 홈쇼핑 채널이면 어떠랴. 맥주 한캔 딱! 따면 소확행이란다.

나는 토요일 한 낮에 40대 최고 인기프로라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며 막걸리에 파전이면 좋다. 이런날 비라도 오면 금상첨화.ㅋ

공자님도 소확행에 대해 말씀하셨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다.飯疏食, 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 논어. 술이15장

즐거움이란 작은 곳에도 있다는 말씀이다.
어릴적 바람이 솔솔 통하는 마루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던 기억이 난다. 식구들 모두에게 시원함을 더해주던 선풍기. 그 털털 거리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힘겹게 모가지를 돌리던 선풍기가 눈에 선하다. 행복한 추억속 한 장면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이 모이면 행복한 삶이 된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성공을 찾을까? 아마 작은 행복이 아니라 더 큰 행복이 그 안에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리라.

과연 그럴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타인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성공을 안해봐서 모르겠으나, 행복은 욕망을 성취하는데 있지 않고, 욕망을 버리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는 포도를 따 먹으려던 여우가 손이 닿지 않자, 저건 신포도일꺼라며 포기하는 이솝이야기 속 여우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것이 정신승리일 뿐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마누라가 해준 파전과 막걸리가 앞에 있다. 마침 오늘은 창밖으로 비도 시원하게 온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몇이나 있겠는가? 명심보감 ‘交友篇(교우편)’의 한 구절이다.

상식相識의 ‘식’과 지심知心의 ‘지’는 모두 ‘안다’라는 뜻이지만, ‘식(識)’은 겉모양 정도만 인식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지(知)’는 ‘깨닫다, 이해하다’와 같은 좀 더 심화된 의미가 있다.

그러니 지심은 ‘마음을 이해해 주다’라는 뜻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생각이다. 생각이란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가치관이므로, 지심이란 그 사람의 가치관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상식相識,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이 그 옛날 천하에 가득했다면, 지금은 우주에 가득하다. 페이스북, 밴드, 트위터, 블로그 등 sns 덕분이다.

그러나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쥐고 있어도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지심知心이 없어서는 아닐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