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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不厭 誨人不倦”
배움을 싫어하지 않고,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출처: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 7장.

해설

배움에 대한 열정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며, 또한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데에도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학문에 대한 열정을 지속하며, 배운 지식을 나누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성장시킵니다. 오늘도 배우고, 가르치며 성장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늘의 공을 탐한다는 뜻, 남의 공적을 도용함을 비유하는 말.

춘추시대(BC 770~403) 진(晉)나라 헌공의 아들 중이는 왕위 권력 다툼을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했다. 19년의 긴 유랑 생활 끝에 여러 신하와 장인인 진목공(秦穆公)의 도움을 받아 귀국하여 62세에야 왕위에 올랐다. 이가 춘추오패 중의 한 사람인 진 문공(晉文公)이다. 고생을 함께한 신하들에게 논공행상을 하였으나, 굶주린 중이에게 허벅지살을 베어 삶아 바친 개자추(介子推)는 잊혀져 그에게는 상이 돌아가지 않았다.

이에 개자추는 “지금 사람들이 모두 자기 덕분이라고 생색을 내는데 이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을 도적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을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로 삼으려 하니 다시 말할 것이 있겠는가(貪天之功)?”라며 어머니와 함께 면산(綿山) 깊은 곳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뒤늦게 문공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책하며, 개자추가 억지로라도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으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고 말았다. – 춘추좌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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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과 북두칠성이란 뜻. 어떤 분야의 제일인자로 꼽히거나, 세상 사람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

당나라 때 사대시인(四大詩人)의 한 사람으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굴지의 명문장가로 꼽혔던 한유(韓愈, 자는 퇴지(退之))는 768년에 현재의 하남성(河南省)에서 태어났다.

한유는 9대 황제인 덕종(德宗, 재위 779~805) 시절, 25세의 나이로 진사(進士) 시험에 급제한 뒤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올랐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를 강하게 반대하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과 파직(罷職)을 당했으나 재등용되곤 했다. 만년에 그는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역임하였고, 57세인 824년에 세상을 떠났다.

순탄치 못했던 그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한유는 절친한 벗인 유종원(柳宗元, 자는 자후(子厚))과 함께 ‘한유(韓柳)’로 불리며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하는 등 학문에 힘썼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대해 《당서(唐書)》 〈한유전(韓愈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당나라가 흥성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춘추 시대의 여섯 가지 경서)를 가지고 여러 학자들의 스승이 되었다. 한유가 죽은 뒤 그의 학문은 더욱 흥성했으며, 그래서 학자들은 한유를 ‘태산북두’를 우러러보듯 존경했다.”

이처럼 한유는 자신의 학문적 업적으로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고, 많은 학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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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이 알을 누르다. 큰 위력으로 내리 누름. 아주 손쉬운 것. 매우 강하여 상대가 없거나 강한 자가 약한자를 억압함을 비유하는 말.

진(晉) 나라 때 손혜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의 조부와 부친은 삼국시대 오(吳) 나라에서 관리로 일했다.

그 당시 진 나라는 각 지역 황족들 간의 다툼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동해(東海) 왕 사마 월(司馬越)이 군사를 일으켜 세력이 커지자, 손혜는 사마 월에게 서신을 보내 그를 칭송하였다.

서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대의 깃발이 한 번 휘날리면 오악(五岳)이 무너지고, 그대의 입김 한 번이면 강물이 거꾸로 흐르니, 그대의 이러한 힘으로 역사의 흐름을 밀고 나아가 반역의 무리들을 토벌하고, 정의를 바로 잡으소서. 이는 실로 맹수가 여우를 삼키고, 태산이 계란을 깔아 뭉개고, 작은 불씨가 바람을 타고 넓은 들을 태우는 것처럼(泰山壓卵, 因風燎原), 쉬운 일입니다.” – [출전] 진서(晉書) 손혜전(孫惠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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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던 것을 뱉고, 감던 머리를 움켜쥔다’는 뜻으로 훌륭한 인재를 얻기 위해 있는 성의와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비유한 말.

주공은 조카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잡았으며, 이후 자신이 가진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의 이러한 행적은 후대에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주공이 아들 백금(伯禽)을 훈계하면서 한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머리를 감는 도중에도 손님이 찾아오면 머리를 움켜쥐고 나가서 손님을 맞이하였다. 이런 일이 한 번 머리를 감는 동안 세 번씩 일어난다고 해도 나는 매번 그렇게 했다.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찾아오면 먹던 밥을 뱉고 나가서 손님을 맞았다. 그렇게 하고도 나는 손님맞이를 소홀히 하여 천하의 훌륭한 인재를 잃게 될까봐 오히려 걱정하였다.”

이 이야기는 손님을 맞이하는 데 있어 주공이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주공은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늘 신경 썼으며, 이를 통해 훌륭한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는 그의 겸손과 예의를 잘 보여주는 일화로, 후대 사람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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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에게 물건을 던져서 때려잡고 싶으나 옆에 있는 그릇을 깰까 꺼린다는 뜻으로, 임금 곁에 가까이 있는 신하를 제거하고 싶으나 임금에게 누(累)가 될까 꺼림을 비유함.

​사헌부 대사헌 윤계겸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황효원이 훈맹한 것을 믿고 사적인 감정으로 대간을 비난하고 욕을 보이니, 의당 법으로 통렬히 바로잡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용서하시니 대신을 대우하는 것은 후하십니다마는, 옛말에 ‘투서기기’라 하였습니다. 쥐가 그릇 가까이 있어도 그릇 때문에 물건을 던져 쥐를 잡지 못하는데 더구나 전하의 귀와 눈이 되는 신하인 대간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하였다. [성종실록 권제69, 3장 앞쪽, 성종 7년 7월 5일(병오)]

[네이버 지식백과] 투서기기 [投鼠忌器]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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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을 던져 강의 흐름을 가로막음. 병력에 있어서 강대함을 비유한 말.

서진 말기 정치 부패로 북방의 이민족들이 16개의 나라를 세웠다. 동진 시대에 저족이 세운 전진이 강성해지자, 전진의 왕 부견은 왕맹을 국상으로 임명해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중국 북부를 지배했다. 부견은 동진을 정복하려고 대규모 병력을 모아 97만 명으로 늘렸고, 자신만만하게 신하들에게 말했다. “장강 험준한 게 뭐 별 것이겠는가? 우리들의 이 많은 군사들이 채찍을 하나씩 강물에 던져 넣어도 족히 강의 흐름을 끊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以吾之衆旅, 投鞭于江, 足斷其流]. “

부견의 동생 부융과 태자는 전쟁 준비가 덜 되었고, 동진이 장강을 방어벽으로 삼아 단결된 상태라며 신중할 것을 조언했으나, 부견은 이를 무시하고 남진했다. 결국 비수 전투에서 부견은 동진의 사안 등이 이끄는 군대에게 대패해 많은 군사를 잃고, 자신의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 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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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히다’라는 뜻으로 전쟁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의미.

파부침선(破釜沈船)의 유래는 중국 역사소설인 《초한지》와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서 비롯됩니다. 이 사자성어는 배를 부수고 솥을 깨뜨린다는 의미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나타냅니다.

진나라는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로, 엄격한 법과 질서로 국가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고 난 후, 중국은 다시 분열되었고, 폭정에 시달렸던 백성들은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조나라와 초나라 등 여러 나라가 진나라에 대항하게 되었습니다.

초한지의 주인공 항우는 숙부 항량과 함께 조나라를 도와 진나라와 싸웠습니다. 그러나 조나라는 진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 전투에서 항량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항우는 직접 병사를 모아 진나라를 치러 가기로 결심합니다. 항우는 군대가 강을 건넌 후, 타고 왔던 배를 부수어 침몰시키고, 식량도 3일분만 남긴 채 나머지 솥들을 모두 깨뜨리도록 명령합니다. 이는 병사들에게 후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필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항우의 군대는 진나라 군대를 궤멸시키고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러한 항우의 결단력과 결기를 후대에서는 ‘파부침선’이라는 사자성어로 표현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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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라는 뜻으로 세력이 강대해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비유하는 말. 또는 일이 거침없이 잘 풀리는 모양새.

위(魏)나라의 권신 사마염(司馬炎)은 원제(元帝)를 폐한 뒤,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무제(武帝)라 일컫고, 국호를 진(晉)이라고 했다. 그 후 무제는 진남대장군 두예(杜預)에게 오(吳)나라 정벌을 명하였다. 두예가 무창(武昌)까지 공략하였을 때 휘하 장수들은 ‘강물의 범람과 전염병의 우려’를 들면서 일단 철군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두예는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이다. 대나무란 처음 두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인가.」 라고 단호하게 반박하며, 곧바로 전군을 휘몰아 오나라의 도읍 건업(建業)으로 진격하여 단숨에 공략했다. 이에 오왕 손호(孫皓)가 항복함으로써 마침내 진(晉)나라는 삼국(三國)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했다. – 《진서(晉書)》

출처 : 가스신문(http://www.ga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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