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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牛一毛(구우일모)는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박힌 하나의 털’이란 뜻으로 많은 것 가운데에서 극히 적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망망한 바다에 떨어진 좁쌀 하나라는 뜻을 가진 ‘창해일속滄海一粟’이 있다.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는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흉노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무제는 자신의 애첩의 오빠인 이광리 장군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고 싶어 정예 기마 군단을 주며 출정할 것을 명했다. 그런데 이 때 명문 장군가의 후예였던 이릉이라는 자도 공을 세우고 싶어서 무제에게 병력을 요청했다. 무제는 거절했지만 이릉은 고집스럽게 계속해서 요구를 하여 결국 보병 5천을 얻었으나 이 일로 무제의 심기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이릉은 적은 군대로도 흉노와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쟁에서 패해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 일을 보고받은 무제는 몹시 화가나서 사형을 명했고, 모든 신하들은 무제의 노여움을 살 것을 두려워 하며 이릉을 비난하고 능지처참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사마천이 이릉은 인격도 출중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번 전쟁에서 진 것은 중과부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이릉을 변호했다. 무제는 몹시 노여워하며 사마천을 태사령의 직책에서 파면하고 사형을 명했다. 당시 사형을 면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거나 궁형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벌금의 액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서 사마천이 태사령이라는 직책으로 받는 녹봉으로 이 벌금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의 시대풍조는 궁형을 받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졌지만, 사마천은 궁형을 택했다.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에게 알리는 글 <보임안서報任安書>에 다음과 같이 참담한 심정을 알렸다. “내가 법에 따라 사형을 받는다 해도 한낱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터럭 하나 없어짐과 같을 뿐이다. 나와 같은 존재는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른가. 세상 사람들 역시 내가 절개를 위해 죽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쁜 말을 하다 죄를 지어 어리석게 죽었다고 여기리라.”
궁형으로 죽음을 모면한 사마천은 2년후 아버지 대부터 편찬중이었던 역사서 《사기》 130권을 완성하였다. 그는 씻지 못할 치욕을 견디며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사기를 완성함으로써, ‘중국 최고의 역사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그가 이룬 업적은 지금도 중국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장대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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