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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건국은 태조 이성계에 의하여 실현되었지만 그 터전은 목조 이안사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안사는 태조 이성계의 고조(高祖), 곧 이성계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입니다. 원래 전라도 전주에 살았는데 그 고을의 수령이 이안사가 사랑하는 기생과 관계하자 싸움이 벌어졌고, 전주의 지주(知州;주의 장관)는 고을 수령과 한편이 되어 조정에 보고하는 한편 군사를 동원하여 그를 해치려 합니다. 이 정보를 들은 이안사는 외가(外家)인 삼척으로 이주를 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주의 그 수령이 삼척으로 순시(巡視)한다는 소식이 들려 하는 수 없이 다시 북쪽 끝 동북면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여기에서 이안사는 전주에서 부터 자신을 따라온 170여 호와 동북면에서 자리를 잡고는 인근의 고려인들을 규합(糾合)했습니다. 당시 이 일대에는 몽고 군대가 들어와 진을 치고 있었는데, 이안사의 세가 커지자 몽고는 이안사에게 벼슬을 주었고 동북면의 실력자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흘러 원제국이 약화되자 이안사의 증손이자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아들 이성계와 함께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공민왕을 알현하고 고려에 충성을 맹세하게 됩니다. 이 때 즈음 고려의 공민왕은 원에게 빼앗긴 동북면 지역을 되찾으려 쌍성총관부를 탈환(奪還)하기로 하였는데(1356년), 이자춘에게 밀명을 내려 동북면에 돌아가 있다가 내응(內應)토록 하였습니다. 이 작전이 성공하여 고려는 옛 땅을 되찾았고 쌍성총관부 함락에 공을 세운 이자춘은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동북병마사가 되어 벼슬을 하다 5년 뒤 동북면으로 돌아와 1361년 생을 마쳤습니다.
그 해 겨울 원제국의 약화로 원에 반기를 든 홍건적은 원에 쫓기다 고려로 쳐들어와 개경을 함락시켰는데, 이듬해 1월 이성계는 가병 2000명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해 큰 공을 세우고, 몇달 뒤에는 원나라 장수 나하추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으며, 이후에도 계속되는 크고 작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고려를 대표하는 명장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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