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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성어"의 글 태그

자신의 처지로 미루어 남의 형편을 헤아리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큰 눈이 내렸다. 제나라의 경공은 따듯한 방 안에서 여우털로 만든 옷을 입고 설경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 재상인 안자가 들어와 경공의 곁에서 함께 쉼 없이 내리는 눈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경공은 안자 역시 아름다운 경치에 흥취를 느낀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올해 날씨는 이상하군. 사흘 동안이나 눈이 내려 땅을 뒤덮었건만 마치 봄날처럼 조금도 춥지 않군.”
그러자 안자는 경공의 여우털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가 배불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자기가 따뜻한 옷을 입으면 누군가가 얼어 죽지 않을까를 걱정했으며, 자기의 몸이 편안하면 누군가가 피로해하지 않을까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공께서는 다른 사람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군요.”
안자의 폐부肺腑를 찌르는 듯한 이 말에 경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위대함에 감탄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함, 또는 어떤 일에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 하는 탄식.

중국의 황하 중류의 맹진에 ‘하백’이라는 강의 신이 있었다. 그는 항상 황하의 강물을 보며 이 강보다는 큰 강이 없을 것이라며 감탄했다. 그러던 어느날 늙은 자라에게서 황하의 몇 갑절이나 된다는 북해(北海)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황하의 중류를 떠나본적이 없던 하백은 자라의 말을 믿지 못하고 직접 강 하류로 내려가 북해를 보기로 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하백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을 부끄러워하였다.

발분망식發憤忘食이란 ‘어떤 일에 열중하여 밥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깊이 빠져 들다.’라는 뜻으로 논어 술이편 18장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날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초나라의 변방 섭현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고을의 벼슬아치인 섭공이라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 자로에게 공자는 어떠한 사람인지 물었다. 자로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여 미처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공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자로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그(공자)의 사람 됨됨이는 어떤 일에 깊이 빠져들면 밥 먹는 것 조차 잊고 즐거워하며 모든 근심 걱정도 잊고 나이를 먹어 늙어가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어떤 일에 깊이 빠져들면 밥 먹는 것 조차 잊고 늙어가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는 공자의 말씀이 부럽기 그지없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인생 자체에 권태를 느낀다. 나이가 들고 노쇠해지면 일상 속에서 이제 더 이상 신기한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육체는 늙더라도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늙지 않는다. 그러니 열정과 관심을 쏟아 부을 만한 대상을 찾아내 다시 한번 발분망식 하자. 그것이 바로 삶의 권태를 치료하고 인생을 마지막까지 즐겁게 살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하다

“좋은 안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먹어 보아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극한 진리가 있다고 해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왜 좋은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배워 본 이후에 자기의 부족함을 알 수 있으며, 가르친 뒤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한다고 하는 것이다.” – 예기.학기편

‘책을 읽어 옛 현인(賢人)들과 벗이 되다.’라는 뜻으로, 독서를 통해 옛 현인들과 벗함으로써 훌륭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고사는 맹자 만장장구하편에 보인다. 맹자께서 만장에게 말씀하셨다.
“한 고을의 훌륭한 선비라야 한 고을의 훌륭한 선비와 벗할 수 있고, 한 나라의 훌륭한 선비라야 한 나라의 훌륭한 선비와 벗할 수 있으며, 천하의 훌륭한 선비라야 천하의 훌륭한 선비와 벗할 수 있네.斯友一鄕之善士, 一國之善士, 斯友一國之善士, 天下之善士, 斯友天下之善士. 천하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또다시 위로 올라가 옛사람을 논하여 옛사람에게서 취하니, 옛사람의 시(詩)를 외우며 옛사람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의 사람됨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이 때문에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행한 일의 자취를 논하는 것이니, 이는 위로 올라가서 옛사람을 벗하는[尙友] 것이네.以友天下之善士, 爲未足, 又尙論古之人, 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是以, 論其世也, 是尙友也.”

훌륭한 사람과 벗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먼저 훌륭해져야 할 것이다. 그 비결은 바로 독서를 통해 동서고금의 현인들을 만나 그들을 벗 삼는 것 만한 것이 없겠다.

속은 양인데 가죽은 호랑이라는 뜻으로 ‘겉모습은 훌륭하나 그에 걸맞은 실력이나 실속은 없음.’ 또는 ‘겉모습이 바뀌어도 본질은 바뀌지 않음.’이라는 의미이다. 우리 속담의 ‘빛 좋은 개살구’와 비슷하다.

중국 한(漢)나라 때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에서 유래된 말이다.
혹자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 제 입으로 성이 공孔씨이고 자는 중니仲尼라 하며 공자의 문하에 들어가 그 안채에 올라 그의 책상에 앉아 그의 옷을 입는다면 그 사람은 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겉은 그렇지만 그 바탕은 아니다’
‘바탕이란 무엇입니까?’
‘양은 그 몸에 호랑이 가죽을 씌어 놓아도 풀을 보면 기뻐하고, 승냥이를 보면 벌벌 떨며, 자신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사실을 잊어 버린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忘其皮之虎矣)’ 라고 대답하였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 시시포스는 가파른 언덕의 꼭대기로 큰 돌을 굴려 올리는 벌을 받았다. 그리고 정상에 올린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영원히 반복해야 했다.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시시포스처럼 안되는 일을 계속해나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가? 안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승리자인가?

춘추전국시대 공자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임금을 설득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자로가 노나라의 석문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석문의 문지기를 만나 대화를 나눈 일이 있었다.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에서 왔습니까?”
“공씨의 문하에서 왔습니다.”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 사람 말이지요?(是知其不可而爲者與?)” – 논어.헌문편

문지기는 공자가 안되는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는(不可而爲)사람으로 그려낸다. 공자와 같이 성공할 수 없는 일에 열정을 쏟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가? 인간승리자인가? 성공할 수 없는 일과 열정을 쏟는 것 중 어느 것에 방점을 찍느냐는 각자의 주관이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치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혼자 모른척 함’, ‘자신이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 ‘얕은 꾀로 남을 속이려 해도 소용이 없음’이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눈 가리고 아웅하다’ 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다(以掌蔽天)’와도 의미가 비슷하다.

이 고사성어는 여씨춘추에 보인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범씨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큰 종이 있었다. 어느 날 범씨 가문이 몰락하자 한 백성이 종을 훔치려 하였다. 워낙 종이 커서 가지고 갈 수가 없자 종을 깨부숴 가져가려고 망치로 내려쳤다. 당연하게도 큰 소리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깜짝 놀라 제 귀를 틀어막고 다시 종을 내려쳤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종소리를 들었고, 그 백성은 결국 그 자리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제 귀를 틀어막든 그러지 않든 종을 내리치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자명한 사실을 스스로만 모른체하여 감추려 하는 태도가 참으로 어리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