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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모음"의 글 태그

속은 양인데 가죽은 호랑이라는 뜻으로 ‘겉모습은 훌륭하나 그에 걸맞은 실력이나 실속은 없음.’ 또는 ‘겉모습이 바뀌어도 본질은 바뀌지 않음.’이라는 의미이다. 우리 속담의 ‘빛 좋은 개살구’와 비슷하다.

중국 한(漢)나라 때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에서 유래된 말이다.
혹자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 제 입으로 성이 공孔씨이고 자는 중니仲尼라 하며 공자의 문하에 들어가 그 안채에 올라 그의 책상에 앉아 그의 옷을 입는다면 그 사람은 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겉은 그렇지만 그 바탕은 아니다’
‘바탕이란 무엇입니까?’
‘양은 그 몸에 호랑이 가죽을 씌어 놓아도 풀을 보면 기뻐하고, 승냥이를 보면 벌벌 떨며, 자신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사실을 잊어 버린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忘其皮之虎矣)’ 라고 대답하였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치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혼자 모른척 함’, ‘자신이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 ‘얕은 꾀로 남을 속이려 해도 소용이 없음’이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눈 가리고 아웅하다’ 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다(以掌蔽天)’와도 의미가 비슷하다.

이 고사성어는 여씨춘추에 보인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범씨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큰 종이 있었다. 어느 날 범씨 가문이 몰락하자 한 백성이 종을 훔치려 하였다. 워낙 종이 커서 가지고 갈 수가 없자 종을 깨부숴 가져가려고 망치로 내려쳤다. 당연하게도 큰 소리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깜짝 놀라 제 귀를 틀어막고 다시 종을 내려쳤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종소리를 들었고, 그 백성은 결국 그 자리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제 귀를 틀어막든 그러지 않든 종을 내리치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자명한 사실을 스스로만 모른체하여 감추려 하는 태도가 참으로 어리석다.

강한 쇠뇌에서 발사된 화살의 끝. 힘찬 활에서 발사된 화살은 처음에는 철판도 뚫을 듯 강력하지만 마지막에서는 힘이 떨어져 비단조차 뚫을 수 없다는 뜻으로, 처음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간 데 없고 맥없이 끝을 맺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전한시대(前漢時代) 한고조 유방은 흉노를 정벌하려다 패하고는 흉노와 화친하고 공물을 바쳐왔다. 그래도 때로는 강경한 흉노의 선우(왕)들은 화친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지속적으로 국경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이윽고 한무제 시대에 이르러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흉노족을 응징하기로 하고 대신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다. 이때 어사대부 한안국은 흉노를 공격하는 원정계획을 반대하며 말했다. 
“신이 듣기로 회오리 바람도 기세가 잦아들면 깃털조차 날릴 수가 없고, 강한 쇠뇌도 끝에 가서는 얇은 비단조차 뚫을 수 없다고 합니다(强弩之末力不能入魯縞). 흉노를 공격하려면 수천 리를 행군해야 하는데, 강한 군대라 해도 그렇게 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강노지말(強弩之末)이다. – 사기(史記).한장유열전

연못을 말려 고기를 얻는다는 말로,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장래는 생각하지 않음. 

춘추시대, 진(晋)나라 문공은 성복에서 초나라 군대와 일대 접전(BC632)을 하게 되었다. 당시 진나라는 병력이 열세였으므로, 진문공은 부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한 부하가 속임수를 써 볼 것을 권하였다. 진문공은 그 계책을 듣고 부하 이옹이라는 자에게 견해를 물었다. 이옹은 그 의견에 반대하며 말했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서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竭澤而漁 豈不獲得 而明年無魚 焚藪而田 豈不獲得 而明年無獸)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이상 임시 방편의 방법일 뿐입니다.”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다보면 도리어 화를 초래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여씨춘추.의상편.

항룡유회亢龍有悔란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후회가 있다.’라는 뜻으로 주역에 나온다. 항룡은 지나치게 높은 용, 곧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으며 이제 내려올 길 밖에 없음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부귀영달이 극도에 달한 사람은 쇠퇴할 염려가 있으므로 행동을 삼가야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공자(孔子)는
“항룡은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높아 교만하기 때문에 자칫 민심을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항룡의 지위에 오르면 후회하기 십상이다. 즉, 일을 할 때에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지, 무작정 밀고 나가다가는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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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차면 이지러진다. 무슨 일이든 절정에 달한 뒤에는 쇠퇴하게 된다.
 
범저는 魏(위)나라 사람인데, 달변으로 진나라 昭王(소왕)의 신임을 얻어 재상의 자리에 올라 오랜기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권력 말기 범저가 추천한 정안평과 왕계라는 자가 모두 진나라에 큰 죄를 지었다. 정안평은 범저의 추천으로 장군이 되었으나 조나라에 투항하였으며, 왕계는 다른 제후와 내통하다가 사형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연나라의 채택이라는 자가 범저를 찾아왔다. 채택은 범저에게 지금은 왕의 신뢰와 총애를 받고 있지만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지듯이(日中則移 月滿則虧) 이제 물러나지 않는다면 더 큰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범저는 채택이 말이 옳다고 여겨 채택을 천거하고 병을 핑계로 물러나 평안한 말년을 보냈다. – 사기.범저채택열전

닭의 소리를 내고 개 모양을 하여 도적질 하다.
① 잔재주를 자랑함. ② 비굴한 꾀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짓. ③ 行世하는 사람이 배워서는 아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④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하찮은 재주도 언젠가 귀하게 쓰일 데가 있다.

맹상군(孟嘗君)은 춘추전국 시대 제나라 설(薛)땅의 영주이다. 그는 매우 현명하였고, 자신을 찾아오는 빈객들을 잘 대접하여 갖가지 재주 있는 빈객이 300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웃의 진(秦)나라 소왕(昭王)은 이러한 소문을 듣고 맹상군을 진나라로 초대하였다. 당시 진나라는 매우 강하였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이 맹상군은 소왕의 초대를 받아 들여 자신의 빈객 여러명과 함께 진나라로 갔다. 맹상군은 진나라의 소왕을 만나 갖가지 재물과 여우 겨드랑이의 흰털로 만들었다는 가죽옷 호백구(狐白裘)를 바쳤다. 소왕은 매우 기뻐하며 현명한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맹상군이 자신의 나라인 제나라를 위해 일할 것을 두려워해 계략을 짜내 죽이려고 하였다. 맹상군은 이러한 음모를 알게되자, 소왕이 몹시 사랑하고 있는 애첩 연희를 만나 자신을 살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자 애첩은 진왕에게 바친 호백구를 요구하였는데, 맹상군은 다른 호백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때 함께 온 빈객 중 개 흉내를 내어 좀도둑질을 잘 하던 자가 있어, 밤 중에 삼엄森嚴한 경계를 뚫고 진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 바쳤던 호백구를 다시 훔쳐내었다. 맹상군이 호백구를 소왕의 애첩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맹상군은 풀려나자 바로 말을 몰아 제나라로 달아나기 시작하여, 진나라의 마지막 관문 함곡관에 이르렀다. 한편 진나라 소왕은 뒤늦게 맹상군을 풀어 준 것을 후회하며 사람을 시켜 그를 뒤쫓게 하였다. 함곡관의 관문은 첫 닭이 울어야 문을 여는 법이 있었는데, 맹상군이 함곡관에 도착하였을 때는 아직 첫 닭이 울 때가 아니라 거의 잡힐 지경에 이르러 매우 곤란하였다. 그 때 또 다른 빈객 중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닭의 울음 소리를 흉내내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 사기 맹상군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큰 일을 하기 위해 힘을 기르며, 조용히 때를 기다림.

제나라 위왕은 나랏일은 신하들에게 맡기고, 밤낮으로 놀기만 하였다. 그러자 신하들 또한 위계질서가 없고, 다른 나라의 제후들은 함부로 침입하여 땅을 빼앗았다.
왕은 수수께끼를 즐겼는데, 순우곤이라는 신하가 수수께끼를 냈다.
“나라 안의 큰 새가 대궐 뜰에 멈추어 있습니다.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무슨 새인 줄 아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뿐이나 한 번 날면 하늘에 오르며, 울지 않으면 그뿐이나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 후 왕은 여러 지방의 관리 72명을 조정으로 불러 그 중 한 사람은 상을 주고, 한 사람은 벌을 주었다. 그리고는 군사를 일으켜 출정하였다. 제후들이 크게 놀라서 그 동안 침략하여 차지한 제나라 땅을 모두 돌려 주었으며, 이로써 제나라의 위엄이 36년간에 걸쳐 떨쳐졌다. – 사기.골계열전

집안에 사방이 벽(壁) 뿐이라는 뜻으로, 너무 가난하여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비유한 말.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중국 서한(西漢)의 문인(文人)으로 사와 부에 뛰어났다고 한다. 어느날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임공령으로 있던 친구 왕길(王吉)을 찾아갔는데, 그의 주선으로 임공의 부호인 탁왕손의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마침 탁왕손의 집에는 17세의 어린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딸 탁문군이 친정에 와 있었는데, 그녀는 얼굴이 아름답고 음률을 좋아하였다. 사마상여는 그녀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은근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탁문군 역시 그러한 사마상여에게 반하게 되고, 두 사람은 어느날 깊은 밤 함께 도주하여 사마상여의 고향 성도(成都)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사마상여는 “가도사벽家徒四壁”이어서, 주막을 열고는 탁문군에게는 술을 팔게 하고 자신은 시중(市中)에서 품팔이를 하며 지냈다. 이 소문을 들은 탁문군의 아버지 탁왕손은 진노하다가 결국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고 훗날 많은 재산을 남겨주었다. 그 상속으로 부유해진 사마상여는 한무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궁정문인으로 재능을 마음껏 펼치면서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