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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김. 호사유피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고도 함. 짐승도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사람도 죽어서 명예나 업적과 같은 무언가 남기는 것이 있어야 함을 이름.

당나라가 멸망한 뒤, 오대(五代)가 교체하던 시기의 양나라에 왕언장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가장 낮은 병사 출신이었지만 우직하고 솔직한 성격으로 싸울 때마다 공을 세워 대장에 이르렀다. 후량 말기, 후당과의 최후의 결전에서 왕언장은 포로가 되었다. 당나라 임금이 왕언장의 용맹성을 아까워하여 투항을 권유하자, “아침에는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나라를 섬기는 일은 할수 없소.” 라고 하여 결국 사형을 당했다. 왕언장은 항상 입버릇처럼 “표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고 하였는데, 그는 결국 장수로서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Not In My BackYard(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의 줄임말로, 지역이기주의(地域利己主義) 현상의 일종(一種).

주민(住民)과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가 자신(自身)들이 살고 있는 지역(地域)에 혐오시설(嫌惡施設)이 유치(誘致)되는 것을 반대(反對)하는 지역이기주의(地域利己主義)의 한 양상(樣相)으로 이들 시설의 필요성(必要性)을 인정(認定)하면서도 나 아닌 남의 뒷마당에 설치(設置)되기만을 바라는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인 공공주의(公共注意) 결핍증상(缺乏症狀).

증삼이 사람을 죽이다. 거짓말도 되풀이 들으면 믿게 됨.

진나라 무왕 3년, 무왕은 승상 감무를 시켜 한(韓)나라의 의양을 치고자 하였다.
감무가 왕께 말하길 “옛날 비읍(費邑)에 효자로 유명한 증삼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노나라 사람 가운데 증삼과 이름이 똑같은 자가 있어 사람을 죽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증삼의 어머니에게 알려 말하기를,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조금 뒤 또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역시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은 이야기를 하자, 그 어머니는 베 짜던 북을 내 던지고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진 증삼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세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하자 겁을 먹었습니다. 지금 한나라는 수많은 험준한 곳을 넘어 1000리 길을 지나야 합니다. 신이 여러 날이 지나도 의양 땅을 빼앗지 못하면 저를 헐뜯는 자가 어디 세 사람 뿐이겠습니까? 저는 왕께서 증삼의 어머니처럼 북을 내던지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하였다.

– 사마천.사기
유사성어 : 삼인성호(三人成虎)

계란이 곯아 있다. 운이 나쁜 사람은 좋은 기회를 만나도 역시 일이 잘 안됨.

조선 세종대왕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는 어질고 검소(儉素)한 생활을 하였다. 황 정승이 매우 청렴(淸廉)하여 관복(官服)도 한 벌로 빨아 입고 장마철에는 집에 비가 샐 지경이었다. 세종대왕은 황 정승의 생활이 이처럼 가난한 것을 안쓰럽게 여기고 도와줄 방법을 생각하였다. 궁리(窮理) 끝에 묘안(妙案)을 얻은 왕은 “내일 아침 일찍 남대문을 열었을 때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문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다 사서 황 정승에게 주겠노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몰아친 폭풍우(暴風雨)가 종일토록 멈추지 않아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가 다 어두워져 문을 닫으려 할 때 한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왕은 약속대로 이 달걀을 사서 황희에게 주었다. 그런데 황희가 달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삶아 먹으려고 하자 달걀이 모두 곯아서 한 알도 먹을 수가 없었다.

– 송남잡지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귀히 여김. 자기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것만 좋게 여김. 본처를 버리고 첩을 사랑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중국 진나라에 왕희지의 서법과 견줄만하다는 유익이라는 명필이 있었다. 그의 서법을 배우고자 중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가족들은 당시 유행하던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음이 상한 유익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이들이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귀하게 여겨 모두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고 있으니, 한탄스럽다” 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 진중여서

지음(知音) : 소리를 알다.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사람.
백아절현(伯牙絶絃)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 친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함.

춘추시대에 거문고를 아주 잘 타는 백아(伯牙)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그것을 듣고는 거문고를 타는 뜻이 태산에 있으면 ‘산이 우뚝하구나’ 하고 그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출렁출렁하도다’라고 말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知音)이 없음을 슬퍼하였다.

伯牙鼓琴이면 鍾子期聽之하다. 知在太山이면 則巍巍로다하고 志在流水면 則曰湯湯하도다하다. 子期가 死하니 伯牙絶鉉하고 痛世無知音者하다. – 여씨춘추

닭의 갈비. 먹을 것은 적으면서 버리기에는 아깝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위나라와 촉나라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한중이라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했는데, 촉의 유비(劉備)가 한중(漢中)을 먼저 점령하게 되었다. 위(魏)의 조조(曹操)는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공격했지만, 수개월간의 싸움에 군량미가 떨어지고 도망병이 속출하자 어느 날 ‘계륵’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조조의 부하 양수(楊修)는 수도 장안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주위 사람들이 이유를 물으니, “닭의 갈비는 먹으려하면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인데, 한중을 이에 견주었으므로 왕은 곧 귀환(歸還)을 결정하실 것이오.” 그 말대로 조조는 위나라 전군에게 한중으로부터의 철군(撤軍)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 후한서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리다. 남의 권세에 붙어 위세를 부리는 사람을 이르는 말.

전국시대 초나라 선왕때 소해휼이라는 재상이 세력을 잡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선왕이 신하들에게 “듣자하니 주변의 나라들이 우리 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사실이냐?” 라고 묻자 신하 하나가 대답하길. “다른 나라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소해휼이 아니라 바로 왕이십니다. 제가 한 가지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여우가 호랑이에게 잡히자, 말하기를 ‘감히 네가 나를 해치려 드느냐? 하느님께서 나를 뭇 짐승들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네가 나를 해친다면 천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네가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나의 뒤를 따라와 보거라.’하였습니다. 마침내 호랑이가 함께 길을 가게 되었는데, 정말 짐승들이 보이자마자 모두 다 달아났습니다. 호랑이는 자신이 무서워서 짐승들이 달아난 줄은 모르고 여우의 말이 진짜라 여겼습니다. 지금 대왕(大王)께서는 넓은 영토와 백만의 대군을 모두 소해휼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해휼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왕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하였다.

– 전국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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