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無無一能之人이니 若聚十百人而各用其長이면 便爲通才리니 如此則世無棄人하고 人無棄才矣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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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음.
춘추시대 진나라의 왕 진평공은 책략가 기황양에게 “남양현에 현령 자리가 비어 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적당하겠는가?”하고 물으니, 기황양은 “해호를 보내면 반드시 훌륭하게 임무를 해낼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진평공은 놀라 “그대는 해호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하여 해호를 추천하는 것인가?” 하고 묻자, “공께서 물으신 것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에 관한 것이지, 해호가 제 원수인지 아닌지를 물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과연 임명된 해호는 남양현은 잘 다스려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얼마 후, 평공이 다시 묻기를, “지금 조정의 법을 집행할 사람이 한명 필요한데, 누구를 임명하는 것이 적당하겠는가?” 하였다. 기황양이 “기오가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평공이 다시 반문하기를 “기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니오. 어찌 아들을 추천할 수 있소?”, “공께서는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신 것이지, 기오가 제 아들인지 아닌지를 물은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과연 기오 역시 모든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고 칭송을 받았다. 그 후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공자는 기황양을 대공무사의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여기에서 대공무사라는 고사가 생겨났다고 한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다. 가을을 일컫는 말.
몽골고원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퍼져 유목생활을 하던 흉노는 근 2000년 동안 중국 왕조와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흉노는 해마다 가을철에 중국 북방 변경의 농경지대를 약탈하여 기나긴 겨울 동안의 양식을 마련했으므로, 북방 변경의 중국인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天高馬肥)’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의 침입이 있을지 몰라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당나라 초기 시인 두심언이 북방의 흉노를 막기 위해 출정하는 친구 소미도에게 써 준 시에 천고마비의 유래가 있다.
雲淨妖星落 구름은 깨끗한데 요사스런 별 떨어지고,
秋高塞馬肥 가을 하늘 드높으니 변방의 말은 살이 찌네.
據鞍雄劍動 말안장에 올라앉아 영웅검을 휘두르며,
搖筆羽書飛 붓을 휘둘러 승전보를 전하리.
물과 물고기의 사귐.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유비는 삼고초려 후 제갈공명을 얻고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나 관우와 장비는 자기들보다 공명을 더 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되었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즉 나와 제갈공명은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
風雲之會(풍운지회) : 구름이 용을 만나고 바람이 범을 만났다는 뜻으로 명군(明君)과 현상(賢相)이 서로 만나다.
– 삼국지
어릴 때 같이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벗이란 뜻. 어렸을 때의 벗이나 어렸을 때부터 오랜 친구를 의미함.
진(晉 : 東晉)나라 12대 황제인 간문제(簡文帝 : 371-372) 때의 일이다.
촉(蜀)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桓溫)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황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학식과 덕망이 높은 은호(殷浩)라는 이를 건무장군(建武將軍) 임명했다. 사실 은호는 환온과 어렸을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지만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政敵)이 되어 반목(反目)했다.
그 무렵 중원 땅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진나라에서는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하여 중원 땅을 정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군을 이끌고 간 은호는 대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上疏)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竹馬故友]’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모자란 사람. 사리 분별을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비유.
“주자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지혜가 없어서, 콩과 보리도 분간하지 못하였으므로 임금으로 세울 수 없었다.(周子有兄而無慧, 不能辨菽麥, 故不可立)”
– 춘추좌전
‘마음이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일 또는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이나 어떤 일을 추진할 때’를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는 장비의 부탁으로 그의 후원 복숭아밭(도원桃園)에서 다음과 같이 맹세하였다.
念劉備關羽張備 雖然異姓 旣結爲兄弟 則同心協力 求困扶危 上報國家 下安黎庶. 不求同年同月同日生 但願同年同月同日死. 皇天后土 實鑑此心 背義忘恩 天人共戮
생각건대 유비와 관우와 장비는 비록 성이 다르다 할지라도 이미 형제를 맺으려고 하니, 곧 마음을 한가지로 하고 힘을 합쳐, 곤란함을 구원하고 위태함을 도와,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만민을 편안하게 하리라.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남을 구하지 않더라도, 단지 원하는 것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으려 한다. 황천과 후토는 진실로 이 마음을 보시고, 의에 배반하고 은혜를 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일 것이다.
되돌려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다.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아 고침.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 맹자
위 맹자의 말에서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한다는 ‘반구저기’가 나왔는데, 하(夏)나라 백계(伯啓)의 고사에서 기원한 말이라고 한다.
중국 하나라 우(禹)임금 때, 제후 중 한명인 유호씨(有扈氏)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우임금은 아들 백계를 보내 유호씨의 공격을 막게 했는데, 백계는 유호씨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참패의 원인은 많았지만, 백계는 참패의 원인으로 다른 것을 말하지 않고 자기 탓으로 돌리며, “나는 유호씨에 비하여 영토도 작지 않고 백성들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는 나의 덕이 부족하고 지도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백계는 더욱 분발하여 검소하게 생활하며, 백성을 아끼고 덕이 있는 사람을 우대하며 재능 있는 사람을 널리 기용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나자 유호씨가 스스로 복속했다.
대롱의 구멍으로 하늘을 엿본다는 말로 좁은 식견으로는 광대한 사물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음을 의미함.
춘추시대 말기 편작(扁鵲)이라는 뛰어난 명의가 있었다. 그가 괵이라는 작은 나라에 간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 나라의 태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편작은 궁궐의 어의를 만나 태자의 병에 대해 듣고 태자를 살려보겠다고 하였다. 괵 나라의 어의는 깜짝 놀라며 편작을 비웃었다. 편작은 “당신의 의술은 대롱을 가지고 하늘을 엿보며(用管窺天) 좁은 틈새로 상황을 살피는 것과 같이 도저히 전체를 간파한다고 할 수 없소. 나의 의술은 전체를 보는 것이요. 못 믿겠으면 다시 한 번 태자를 진단해 보시오. 양쪽 허벅다리를 쓰다듬어 가다가 음부에 닿으면 아직 그곳이 따뜻할 것이오.”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다시 살펴보니 과연 편작의 말대로였다. 마침내 편작이 침을 놓자 태자가 살아나 며칠 후 건강을 되찾았다. 이 일로 편작이 죽은 이도 살려낸다는 소문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자 편작이 겸손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죽은 이를 소생시킨 것이 아니라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고친 것뿐입니다.”
– 사기.편작창공열전
단장(斷腸)은 ‘창자가 끊어지다’라는 뜻으로 견딜 수 없이 심한 슬픔이나 괴로움을 비유한 것이다. 이 성어의 유래는 세설신어에 보인다.
진나라의 장수 환온이라는 사람이 촉나라로 가던 도중 한 병사가 양자강의 삼협(三峽)에서 원숭이 새끼를 싣고 가자 그 어미가 새끼를 그리워하여 울부짖으며 백여리나 달려와 배에 뛰어 들더니 죽고 말았다.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도 슬퍼했던 나머지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