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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월" 글 보관함

謀事在人 成事在天은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그것이 이루어지느냐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그 결과에 크게 연연해 하지 말라는 말이다.

촉나라의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고 위나라를 공격할 때의 일이다. 제갈량은 계책을 써서 위나라의 사마의를 계곡(호로곡)으로 유인하였다. 계곡에는 화약을 잔뜩 묻어 놓고 화공을 준비한 상황이었다. 사마의는 40만 위군을 거느리고 호로곡에 깊숙이 들어온 다음에야 자신이 제갈량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후퇴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그 순간 불화살이 사방에서 터져나와, 화약에 불이 붙어 폭발했고 순식간에 40만 위군은 무너졌다. 사마의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 때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화공은 통하지 않게 되었고 제갈량으로서는 다 이긴 싸움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이때 제갈량은 탄식하며 말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로구나!謀事在人成事在天”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일의 과정이야 어찌됐든 그 일의 결과가 손해가 있는가, 어떤 이익을 얼마나 가져다 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위 고사성에서 보 듯, 과정에 최선을 다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끝내 좋은 결과로 나타날지는 기약하기 어렵다. 그러니 결과에 신경쓰기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아보인다. 과정에 집중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더 어렵다. 좋은 결과를 이루는 최선의 방법은 과정 속에 있으며, 어떠한 과정으로 결과를 얻어내느냐에 따라 그것이 더 나은 결과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九牛一毛(구우일모)는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박힌 하나의 털’이란 뜻으로 많은 것 가운데에서 극히 적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망망한 바다에 떨어진 좁쌀 하나라는 뜻을 가진 ‘창해일속滄海一粟’이 있다.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는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흉노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무제는 자신의 애첩의 오빠인 이광리 장군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고 싶어 정예 기마 군단을 주며 출정할 것을 명했다. 그런데 이 때 명문 장군가의 후예였던 이릉이라는 자도 공을 세우고 싶어서 무제에게 병력을 요청했다. 무제는 거절했지만 이릉은 고집스럽게 계속해서 요구를 하여 결국 보병 5천을 얻었으나 이 일로 무제의 심기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이릉은 적은 군대로도 흉노와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쟁에서 패해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 일을 보고받은 무제는 몹시 화가나서 사형을 명했고, 모든 신하들은 무제의 노여움을 살 것을 두려워 하며 이릉을 비난하고 능지처참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사마천이 이릉은 인격도 출중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번 전쟁에서 진 것은 중과부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이릉을 변호했다. 무제는 몹시 노여워하며 사마천을 태사령의 직책에서 파면하고 사형을 명했다. 당시 사형을 면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거나 궁형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벌금의 액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서 사마천이 태사령이라는 직책으로 받는 녹봉으로 이 벌금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의 시대풍조는 궁형을 받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졌지만, 사마천은 궁형을 택했다.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에게 알리는 글 <보임안서報任安書>에 다음과 같이 참담한 심정을 알렸다. “내가 법에 따라 사형을 받는다 해도 한낱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터럭 하나 없어짐과 같을 뿐이다. 나와 같은 존재는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른가. 세상 사람들 역시 내가 절개를 위해 죽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쁜 말을 하다 죄를 지어 어리석게 죽었다고 여기리라.”
궁형으로 죽음을 모면한 사마천은 2년후 아버지 대부터 편찬중이었던 역사서 《사기》 130권을 완성하였다. 그는 씻지 못할 치욕을 견디며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사기를 완성함으로써, ‘중국 최고의 역사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그가 이룬 업적은 지금도 중국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장대하게 빛나고 있다.

속이원장은屬耳垣牆은 ‘귀가 담장에 붙어 있다’는 뜻으로 천자문에 나온다. 말을 쉽고 경솔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신라의 제 48대 왕 경문왕은 귀가 당나귀처럼 길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의 모자를 만드는 사람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 답답해하다가 죽기 전에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쳤다. 그런데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 경문왕은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도록 했는데 그 후로는 “임금님 귀는 길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 삼국유사

아무도 들어서는 안되는 말은 자신의 마음속에만 두라. 대나무 숲 구덩이에 쏟아 낸 말도 결국 소문이 난다.

“해도 돌고 달도 돌아 시간은 사람과 같이 어정거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한 자나 되는 큰 보내는 귀하게 여기지 않아도 한 치의 시간은 소중히 여긴다. 시간이란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기 때문이다.聖人不貴尺之璧 而重寸之陰 時難得而易失之也” – 회남자

회남자는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劉安, 기원전 179~기원전 122)이 저술한 책이다. ‘촌음(寸陰)’이란 해시계에서 ‘한 치의 거리를 움직인 그림자’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

“자기의 허물을 보고 남의 허물을 보지 않아야 군자다. 남의 허물을 보고 자기의 허물을 보지 않으면 소인이다. 몸을 참으로 성실하게 살핀다면 자기의 허물은 날마다 드러날 것인데, 어느 겨를에 남의 허물을 살필 틈이 있겠는가? 남의 허물을 살피는 자는 자기 몸을 성실하게 살피지 않는 자이다. 자기의 허물은 용서하고 남의 허물만을 알며, 자기의 허물은 덮어두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 내면 그 허물이야말로 큰 것이다. 능히 이러한 허물을 고쳐야 비로소 허물이 없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 신흠(1566~1628).〈검신편〉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강인한 성격’, 또는 ‘볼썽사납게 서로 헐뜯거나 다툼’을 뜻하는 말이다.  
이성계는 조선 건국 직후 정도전에게 각 지역 사람들의 품성을 평가하도록 하였다. 정도전은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 – 거울에 비친 미인),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 – 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 –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굳은 절개), 강원도는 암하노불(岩下老佛 – 바위 아래 늙은 부처),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 – 봄 물결에 던지는 돌), 평안도는 산림맹호(山林猛虎 – 산속 사나운 호랑이)라고 평했다.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를 평할 때 정도전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전투구(泥田鬪狗 –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고 말하니 이성계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정도전은 이어 함경도 사람은 석전경우(石田耕牛 – 돌 밭은 가는 소)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있다고 해서 기분을 누그러뜨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