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한자성어"의 글 태그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 분야의 달인(達人)이라면 도구나 조건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시절 글씨를 잘 쓰기로 구양순이 유명했는데, 그는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또 다른 서예의 달인으로 우세남·저수량·유공권이 있었는데,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자신의 글씨가 구양순에 비하여 어떠하냐고 묻자, “구양순은 어떤 종이에 어떤 붓을 사용하여도 자기 마음대로 글씨를 쓴다고 한다. 자네는 아무래도 안될꺼야.”라고 했다. 저수량은 붓이나 먹이 좋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능서불택필이라니 언감생심焉敢生心, 나로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또 그러한 경지에 올랐다 한들, 다른 사람이 평가할 일이지 본인이 그렇다 하면 그 얼마나 오만하게 들릴 말인가?

그러니 대신 임지학서 지수진묵(臨池學書 池水盡墨)을 마음에 새길 구절로 삼는다. 이 문장은 ‘못에 임하여 글씨를 배움에 연못의 물이 모두 검어졌다’는 뜻으로 뼈를 깎는 듯한 노력을 의미한다. 이 고사는 중국 후한의 서예가인 장지의 이야기이다. 장지는 서예를 배움에 자만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고, 매우 부지런히 노력하고 꾸준히 익혔다고 전하는데, 그는 오로지 서도(書道)를 벗 삼았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글씨를 썼다고 한다. 베가 있으면 거기에 글씨를 썼고, 연못가의 작은 돌에도 글씨를 썼다. 그리고 못에 붓을 헹구었는데 그 못이 전부 검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임지학서 지수진묵(臨池學書 池水盡墨)이라는 구절이 유래하였다.

못물이 검어지도록 붓을 헹구던 장지의 노력 역시 흉내내기 힘들겠지만, 이 구절을 마음에 새겨 한 분야에서 각고의 노력을 한다면 또한 나름의 발전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모기를 보고 칼을 뽑다는 뜻으로 조그만 일에도 성을 내는 소견좁은 행동이나 하찮은 일에 거창하게 덤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논어 양화편의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닭 잡는데 어찌 소 칼을 쓰리오)”와도 비슷한 말이다.

또 비슷한 성어로 교각살우(矯角殺牛)도 있다. 쇠뿔을 고치려다가 오히려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작은 일에 신경을 쓰다가 큰 일을 망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작은 일에 거창하게 덤비다가는 오히려 크게 일을 망치는 것은 경계하는 구절이 많다.

물론 모기를 잡으려면 양 손바닥이나 살충제면 충분하다. 모기를 잡으려 칼을 뺐다가는 본인은 물론 옆에 있는 사람까지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모기를 보고 칼을 뽑을까? 모기로 판단을 잘못한 까닭에 칼을 뽑는 것이 아닐까? 진짜 모기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모두에게 모기 같은 일이라는 것은 없다. 각자의 가치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소뿔 대회’가 있어 그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소의 주인이라면 어떨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야 왜 멀쩡한 소뿔을 고치려다 소를 잡느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야 소뿔을 고쳐놓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엉뚱한 일로 씩씩거리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본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나를 둘러싸고 생기는 일들이 ‘작은 일인지, 큰 일인지?’ ‘하찮은 일인지, 중요한 일인지?’ 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판단할 만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본인의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인생을 살아가는지, 본인 삶의 방향은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 삼아 판단한다면 모기를 보고 칼을 빼는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 주장에 맞도록 하다.’라는 뜻으로 전혀 다른 이론을 자신의 주장에 근거로 쓰기 위해 강제로 부합시켜 옳다고 우길 때 쓰는 말이다.

1. 어떤 사람들은 이 논리를 견강부회라 치부할 지도 모른다.
2. 상황이 악화되는 이유를 정치적 의도와 결부시키려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이다.

비슷한 한자성어로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있다. 아전인수란 다른 사람이야 농사를 망치든 말든 ‘내 밭에 물을 끌어온다’는 뜻으로, 남들의 상황이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를 말한다.

1. 그 사람의 행동은 아전인수 격이다.

 ‘격’이 일부 명사 뒤에 쓰여서 자격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의존 명사로서 앞말과 띄어쓴다.

국립국어원 ‘우리말 바로 쓰기’는 ‘아전인수(我田引水)’와 견강부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하 전문.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이라는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주로 ‘말’과 관련되고,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인 ‘아전인수(我田引水)’는 ‘말’뿐만 아니라 ‘생각’, ‘행동’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있으므로, 이 둘이 어떤 문맥에서나 통용된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작은 것을 탐내다 큰 것을 잃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에 연연하다 오히려 큰 것을 놓치게 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함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 중국 춘추 전국 시대 강대국인 진나라의 혜왕은 촉나라를 정복하려 했다.
촉나라는 전략적으로도 꼭 필요한 지역인데다가, 많은 보화를 지닌 나라였으므로 촉을 정복하면 국익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촉나라로 가는 지형이 매우 험난하여 침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나라 혜왕은 촉왕이 욕심이 많은 점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혜왕은 우선 사람을 시켜 커다란 소를 만들게 하고는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넣고 황금 똥을 누는 소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촉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 소를 보낼 길이 만들어진다면 황금똥을 누는 소를 우호의 예물로 보내겠다고 하였다. 촉나라의 신하는 함정일 것이라고 간언했지만 촉왕은 보화에 눈이 멀어 백성들을 동원하여 산을 뚫고 계곡을 메워 소가 지날 큰길을 만들었다. 길이 뚫리자 진나라 왕은 곧바로 촉나라를 공격하여 쉽게 정복하였다. 결국 촉왕은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나라를 잃고 말았다.

지금 당장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 지금 내가 욕심내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 때문에 뒤로 밀쳐 진 일들은 과연 작은 일인가?

부가 중요한가? 건강이중요한가?
일이 중요한가? 가족이 중요한가?
재산이 중요한가? 형제가 중요한가?

무엇이 ‘소’이고 무엇이 ‘대’일까? 잘 판단하지 않으면 촉나라의 왕처럼 작은것을 얻고 큰 것을 놓칠지도 모를 일이다.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하찮은 공을 자랑하거나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 것을 자랑 삼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말이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 초기 어양태수 팽종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광무제가 반군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3000 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가세 했으며, 후에 군량 보급의 중책을 맡아 잘 처리함으로 개국공신開國功臣이 되었다. 그러나 팽총은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모반을 꾀했다. 그러자 대장군 주부가 그를 꾸짖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 요동 사람이 자기가 기르던 돼지가 머리가 흰 새끼를 낳자 이를 귀한것으로 여겨 왕에 바치려고 하동까지 갔다. 그런데 그곳의 돼지는 모두 머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고 한다. 만일 그대의 공을 지금 조정에서 논한다면 아마도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함을 알 것이다.”
그러나 팽총은 주부의 이러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연왕이라 스스로 칭하고 모반을 꾀하여 2년 후 토벌되고 말았다.

수서양단이란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라는 뜻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거나 자신에게 이로운 것만을 살피며 눈치 보는 것을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물론 구멍에서 머리만 내민 쥐처럼 상황을 파악하고 조심을 하며 결정을 보류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이 잘못될지언정 반드시 결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결정 없이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다. 때론 그것이 실패보다 더 나쁜 결과일 수 있다. 뼈 아프고 고통스런 실패지만, 실패를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으며 성공으로 가는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도 없이 보류할 것인가? 아니면 실행하고 도전할 것인가?
적절한 때를 놓친다면 실수를 수습하고 만회挽回할 시간도, 다시 도전하여 성공할 시간도 줄어든다. 최악은 완전히 때를 놓치고 후회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백 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어려움과 시련에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의미한다. 백절불요와 비슷한 말로는 ‘백절불굴百折不屈’, ‘불요불굴不撓不屈’이 있다.
중국 역사서 ‘후한서’에 실린 교현이라는 관리의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교현은 겸손하고 검소 하였으며, 청렴하여 자제나 친척들 중에서 큰 관직을 얻은 자가 없었고,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장례에 빈소를 차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또한 부하는 물론 권력자의 부정도 눈감아 주지 않을 정도로 성품이 매우 강직하였다. 그러한 교현이 병치료를 위해 집에 머물러 있을 때, 자신의 열살난 막내 아들이 강도들에게 붙잡혀 집안 누각으로 끌려간 일이 있었다. 관병들이 곧 강도들을 포위했으나 교현의 아들이 다칠까 두려워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현은 “어찌 내 아들의 목숨 때문에 간악한 무리들을 그냥 둘수 있겠는가?” 하며 관병들을 다그쳐 강도는 잡았으나 아들은 구하지 못했다.

훗날 문인이자 서예가인 채옹이라는 사람이 그를 기려 묘비명을 지었다.
“백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았고 대의에 임해서는 빼앗을 수 없는 풍모를 지녔네(有百折不撓 臨大節而不可奪之風).” 

지금 만나는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동성상응 동기상구(同聲相應 同氣相求)

‘같은 소리끼리는 서로 응하며, 같은 기운끼리는 서로 찾게된다.’는 뜻으로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같은 진동수를 갖는 두 개의 소리굽쇠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하나를 울리면 다른 쪽 소리굽쇠도 함께 진동하며 소리가 난다. 공명현상이다. 그러나 두 소리굽쇠의 진동수가 서로 다르면 상대편의 소리굽쇠는 울리지 않는다. 이렇듯 동성상응 동기상구는 뜻이 같거나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의미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과 뜻이 통한다.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에서 ‘동성상응 동기상구’ 문구를 인용하면서 “만약 내가 학문에 뜻을 두고 있다면, 반드시 학문하는 사람을 찾을 것이고 학문하는 사람도 또한 반드시 나를 찾을 것(若我志於學問, 則我必求學問之士. 學問之士 亦必求我矣.)”이라고 하였다.

지금 당신과 어울리는 친구들은 어떤가? 무엇을 좋아하는 친구인가? 그 친구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떠한가? 그 친구의 모습이 당신의 현재 모습이거나 미래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

수전노는 돈을 모을 줄만 알고 쓰는 데는 몹시 인색한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서한(西漢)말년 마원(馬援)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한동안 목축을 하며 큰 재산을 일궜다.
그가 부풍군 독우관(督郵官)이란 벼슬을 하고 있을 때 많은 죄수들을 어느 곳으로 압송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중에 죄수들이 고통을 못이겨 애통하게 부르짖는 것을 보고는 동정심이 우러난 나머지 모두 풀어주어 각기 제 살길을 찾아가도록 하고 자신은 북방으로 달아났다. 마원은 북방으로 가서 한동안 목축을 하였는데,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은 그는 곧 큰 재산을 일구게 되었다. 그러다 “부를 늘리고 나면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돈의 노예, 수전노가 될 뿐이다”라며 재산을 모두 주위에 나눠주었고, 자기는 오히려 떨어진 양가죽 옷을 걸치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등 극히 근면한 생활을 하였다 한다.

사필귀정이란 모든 일은 바른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즉 처음에는 올바르지 못한 일이 일시적으로 통용되거나 득세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모든 일이 결국에는 반드시 옳은 이치대로 돌아가게 된다는 의미이다.

세상일을 보고 있으면 종종 올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권력을 얻거나 부와 명예를 얻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옳지 못한 일로 얻은 권력이나 부와 명예는 뿌리가 없는 꽃과 같아서 금방 시들게 마련이다. 혹 그렇지 않다 한들 어찌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그것을 얻으려 할 것인가?

논어의 한 구절을 옮겨 적는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옳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부와 권력은 내게 뜬구름과 같다.”
飯疏食, 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