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맹자"의 글 태그

등문공이 맹자에게 ‘등나라는 작은 나라이니 힘을 다해 큰 나라를 섬겨도 화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옛날에 태왕이 ‘빈’나라에 살고 있을 때 적인(狄人)이 쳐들어왔습니다. 태왕은 가죽, 비단, 가축, 재물 등을 바쳐 섬기려 하였으나 결국에 화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노인들을 불러 말하기를 ‘적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나의 땅입니다. 내가 듣기로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것 때문에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제가 이 나라를 떠나겠습니다.’하였습니다. 그리고 ‘빈’을 떠나 기산아래에서 사니, ‘빈’나라 사람들은 어진 이를 잃을 수는 없다하며 태왕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대대로 지켜온 땅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죽는 한이 있어도 떠날 수 없다’하였으니, 청컨대 임금께서는 이 둘 중 하나를 택하십시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5장

小勇者 血氣之怒也 大勇者 理義之怒也 血氣之怒 不可有 理義之怒 不可無.
작은 용기는 혈기에서 나오는 노여움이고, 큰 용기는 의리(義理)에서 나오는 노여움이다. 혈기에서 나오는 노여움은 있어서는 안되고, 의리에서 나오는 노여움은 없어서는 안된다.

– 장경부.양혜왕장구하3장

정치의 근본은 백성이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근본이다. 맹자는 백성은 일정한 생업(恒産)이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도 없다고 보았다.(無恒産無恒心). 또한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백성은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한 일 등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되는데, 그 때 백성들이 죄를 지었다 하여 형벌을 주는 것은 백성을 그물질 하는 것(罔民)과 다름없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상.7장

등(滕)문공이 맹자에게 ‘제나라 사람이 우리의 이웃 땅인 설(薛)땅을 빼앗고 성을 쌓아 우리 나라를 핍박(逼迫)하고자 하니 몹시 두렵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옛날 주 문왕의 할아버지 태왕이 ‘빈’나라에 살았는데, 이민족이 침략하자 그곳을 떠나 기산아래에서 살았으니, 그곳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선행을 행하고 기업(基業)을 창건하고 전통을 후세에 전하여 계속할 수 있게 하여 마침내 그 자손이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이치입니다. 지금 제나라를 어찌할 수 없다면 임금께서는 다만 힘써 선을 행할 뿐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4장

등(滕)문공이 맹자에게 ‘등나라는 작은 나라로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데, 어느 나라를 섬겨야 합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그러한 계책은 제가 언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못을 깊이 파고 성을 높이 쌓아 백성과 더불어 지키되, 백성들이 목숨을 바치고 떠나가지 않는다면 한번 해볼 만한 일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3장

추나라와 노나라가 싸웠다. 추나라 목공(穆公)이 맹자에게 ‘전쟁 중에 내 유사(有司-지휘관)중 33명이 죽었는데, 백성들 중에는 죽은 자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윗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고 구원하지 않았으니, 그들을 괘씸히 여겨 모두 죽이고자 하나 그 수가 너무 많아 모두 벨 수는 없고, 그렇다고 죄를 묻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흉년과 기근으로 백성들이 굶어 죽고 사방으로 도주한 자들이 몇 천 명이나 되는데도, 군주의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 차 있으며, 재물창고에는 재화가 충만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유사(有司)중에 왕께 보고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것은 윗사람들이 태만해서 아랫사람을 해친 것입니다. 증자께서 ‘경계하고 경계하라. 네게서 나온 것은 네게로 돌아간다.’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이제야 되갚음을 한 것이니, 군주께서는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만일 군주께서 인정(仁政)을 행하시면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친애하게 되어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2장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하여 취하자, 제후들이 연나라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제선왕이 맹자에게 ‘제후들이 과인을 정벌할 것을 도모하는 자가 많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탕왕(湯王)이 동쪽을 정벌하니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정벌하니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며, 「어찌하여 우리를 먼저 정벌해 주지 않는가?」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까닭은 탕왕께서 포악한 군주를 벌주고 백성들을 위문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나라가 그 백성에게 포악(暴惡)히 하니 왕께서 정벌하시었는데, 지금 그 부형(父兄)을 죽이고 자제(子弟)들을 구속하며 종묘(宗廟)를 부수고 중요한 기물들을 옮겨가는 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천하의 제후들이 군대를 움직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속히 연나라의 노약자들을 돌려보내시고 연나라의 귀중한 보배를 가져오기를 멈추시며, 연나라 백성들에게 물어 어진 정치를 할 군주(君主)를 세워준 뒤에 떠나오신다면, 제후들의 군대를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1장

제나라가 연나라를 쳐 승리하였다. 제선왕이 맹자에게 ‘어떤 사람은 과인에게 연나라를 취하라 하고, 어떤 사람은 반대합니다. 제나가 연나라를 50일만에 함락(陷落)한 것은 인력(人力)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하늘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연나라를 취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災殃)이 있을 것이니, 취함이 어떠합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취해서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하면 취하시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취하지 마십시오. 백성들이 왕의 군대를 환영함은 다만 물에 빠지고 불에 타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민심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또 다른 곳에서 구원을 바랄 뿐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0장

맹자가 말하길

“지금 여기에 아주 값 비싼 박옥(璞玉)이 있으면, 임금께서는 반드시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조탁(彫琢)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사욕을 따르고 어진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니, 어찌된 까닭입니까?”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9장

제선왕이 ‘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을 유치(留置)하고,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하였다는데,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弑害)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합니다.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부(一夫)라 이르니, 일부(一夫)인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군주를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