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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의 글 태그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하찮은 공을 자랑하거나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 것을 자랑 삼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말이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 초기 어양태수 팽종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광무제가 반군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3000 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가세 했으며, 후에 군량 보급의 중책을 맡아 잘 처리함으로 개국공신開國功臣이 되었다. 그러나 팽총은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모반을 꾀했다. 그러자 대장군 주부가 그를 꾸짖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 요동 사람이 자기가 기르던 돼지가 머리가 흰 새끼를 낳자 이를 귀한것으로 여겨 왕에 바치려고 하동까지 갔다. 그런데 그곳의 돼지는 모두 머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고 한다. 만일 그대의 공을 지금 조정에서 논한다면 아마도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함을 알 것이다.”
그러나 팽총은 주부의 이러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연왕이라 스스로 칭하고 모반을 꾀하여 2년 후 토벌되고 말았다.

수서양단이란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라는 뜻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거나 자신에게 이로운 것만을 살피며 눈치 보는 것을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물론 구멍에서 머리만 내민 쥐처럼 상황을 파악하고 조심을 하며 결정을 보류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이 잘못될지언정 반드시 결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결정 없이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다. 때론 그것이 실패보다 더 나쁜 결과일 수 있다. 뼈 아프고 고통스런 실패지만, 실패를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으며 성공으로 가는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도 없이 보류할 것인가? 아니면 실행하고 도전할 것인가?
적절한 때를 놓친다면 실수를 수습하고 만회挽回할 시간도, 다시 도전하여 성공할 시간도 줄어든다. 최악은 완전히 때를 놓치고 후회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백 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어려움과 시련에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의미한다. 백절불요와 비슷한 말로는 ‘백절불굴百折不屈’, ‘불요불굴不撓不屈’이 있다.
중국 역사서 ‘후한서’에 실린 교현이라는 관리의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교현은 겸손하고 검소 하였으며, 청렴하여 자제나 친척들 중에서 큰 관직을 얻은 자가 없었고,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장례에 빈소를 차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또한 부하는 물론 권력자의 부정도 눈감아 주지 않을 정도로 성품이 매우 강직하였다. 그러한 교현이 병치료를 위해 집에 머물러 있을 때, 자신의 열살난 막내 아들이 강도들에게 붙잡혀 집안 누각으로 끌려간 일이 있었다. 관병들이 곧 강도들을 포위했으나 교현의 아들이 다칠까 두려워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현은 “어찌 내 아들의 목숨 때문에 간악한 무리들을 그냥 둘수 있겠는가?” 하며 관병들을 다그쳐 강도는 잡았으나 아들은 구하지 못했다.

훗날 문인이자 서예가인 채옹이라는 사람이 그를 기려 묘비명을 지었다.
“백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았고 대의에 임해서는 빼앗을 수 없는 풍모를 지녔네(有百折不撓 臨大節而不可奪之風).” 

지금 만나는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동성상응 동기상구(同聲相應 同氣相求)

‘같은 소리끼리는 서로 응하며, 같은 기운끼리는 서로 찾게된다.’는 뜻으로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같은 진동수를 갖는 두 개의 소리굽쇠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하나를 울리면 다른 쪽 소리굽쇠도 함께 진동하며 소리가 난다. 공명현상이다. 그러나 두 소리굽쇠의 진동수가 서로 다르면 상대편의 소리굽쇠는 울리지 않는다. 이렇듯 동성상응 동기상구는 뜻이 같거나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의미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과 뜻이 통한다.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에서 ‘동성상응 동기상구’ 문구를 인용하면서 “만약 내가 학문에 뜻을 두고 있다면, 반드시 학문하는 사람을 찾을 것이고 학문하는 사람도 또한 반드시 나를 찾을 것(若我志於學問, 則我必求學問之士. 學問之士 亦必求我矣.)”이라고 하였다.

지금 당신과 어울리는 친구들은 어떤가? 무엇을 좋아하는 친구인가? 그 친구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떠한가? 그 친구의 모습이 당신의 현재 모습이거나 미래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

수전노는 돈을 모을 줄만 알고 쓰는 데는 몹시 인색한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서한(西漢)말년 마원(馬援)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한동안 목축을 하며 큰 재산을 일궜다.
그가 부풍군 독우관(督郵官)이란 벼슬을 하고 있을 때 많은 죄수들을 어느 곳으로 압송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중에 죄수들이 고통을 못이겨 애통하게 부르짖는 것을 보고는 동정심이 우러난 나머지 모두 풀어주어 각기 제 살길을 찾아가도록 하고 자신은 북방으로 달아났다. 마원은 북방으로 가서 한동안 목축을 하였는데,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은 그는 곧 큰 재산을 일구게 되었다. 그러다 “부를 늘리고 나면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돈의 노예, 수전노가 될 뿐이다”라며 재산을 모두 주위에 나눠주었고, 자기는 오히려 떨어진 양가죽 옷을 걸치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등 극히 근면한 생활을 하였다 한다.

적벽대전은 오나라의 손권과 유비가 연합하여 조조의 백만대군에 대항한 전투였다. 조조의 엄청난 세력에 오나라의 주유는 한가지 계책을 내었다. 오나라의 유능한 장수 황개에게 거짓으로 죄를 뒤집어 씌우고, 곤장을 때렸다. 만신창이가 되어 옥에 갇힌 황개는 조조에게 항복문서를 전했고, 이것이 적의 고육지계인 것을 꿈에도 생각못한 조조는 황개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날 밤 배 한척이 조조의 수 많은 배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오자 조조는 황개의 배일 것이라 생각하고 환영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배는 기름을 가득 실은 배였고, 조조의 진영 근처에서 불에 타올라 조조의 백만대군을 무력화 시켜버렸다. 연합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과하지욕은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이라는 뜻으로 큰 뜻을 위해서 사소한 굴욕은 참고 견뎌내다는 의미이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이 있는 세 명의 공신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서한삼걸西漢三杰’이라 불리는 소하, 장량, 한신이다. 그 가운데 왕가의 자손 출신인 한신의 이야기이다.
한신이 젊은 날 고향 회음에서 큰 칼을 차고 저잣거리를 가고 있는데 불량배들이 앞을 가로막고 “네가 용기가 있다면 차고 있는 그 큰 칼로 나를 찔러 봐라! 그렇지 않으면 내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지나가라” 고 하며 시비를 걸어왔다. 한신은 분을 참지 못해 살인자가 되어 도망 다니기 보다는 잠깐의 치욕을 택했다. 이 때 나온 고사성어가 ‘과하지욕袴下之辱’이다. 이 고사성어는 사소한 시비는 참고 넘어갈 수 정도로 한신이 큰 뜻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한신처럼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큰 치욕은 몰라도 종종 작은 모욕을 받거나 자존심에 상처 입을 때가 있다. 받은대로 되돌려주고 자존심을 회복할 것인가? 참고 견딜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든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할 것이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상록수로 사시사철 항상 푸르면서도 서로 비슷하게 생겨 흔히 가까운 벗으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송무백열이라고 하면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 되어 기뻐할 때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송무백열과 비슷한 뜻의 사자성어로는 혜분난비(蕙焚蘭悲)가 있는데, ‘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벗의 불행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국정농단을 한자로 쓰면 國政壟斷이 된다. 농단의 농을 어감상 ‘弄(희롱할 롱)’이 아닐까 했는데, 壟(언덕 롱)이다. 농단(壟斷)은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오른 언덕’이라는 뜻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로 맹자 공손추장구에 보인다.

전국시대 제나라 선왕 때, 맹자는 제나라에서 수년간 머물렀으나 왕도정치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귀국을 결심했다. 선왕은 맹자에게 높은 봉록을 줄터이니 제나라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제의 했으나 맹자는 농단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맹자는 이어 농단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한 욕심많은 교활한 사나이가 시장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높은 언덕(농단壟斷)에 올라가 시장을 내려다 보고는 이익이 날 만한 것들은 모두 독차지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이 사나이를 비난하였고, 관리는 그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농단’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차지함’이라는 속뜻이 생기게 되었다. 국정농단이란 좋은 자리에서 이익을 독점하듯 나라의 정사를 마음대로 쥐락펴락 한다는 뜻이다.

네 가지가 알고 있다는 뜻으로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말이다.

후한서에 보인다. 중국 한나라 때 양진이 동래 태수로 임명 되었을 무렵, 창읍의 현령 왕밀이 찾아와 황금 열 근을 바쳤다. 왕밀은 예전에 양진의 추천을 받아 벼슬을 얻은 사람이다. 양진이 말했다.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걸 잊었는가?” 왕밀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허물없는 옛정으로 올리는 것이고,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모를것입니다.”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고地知, 그대가 알고子知, 내가 아네我知.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 하는가?” 하니 왕밀이 부끄러워하며 나갔다고 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아무도 모르게 행한 일이라도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