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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려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다.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아 고침.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 맹자
위 맹자의 말에서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한다는 ‘반구저기’가 나왔는데, 하(夏)나라 백계(伯啓)의 고사에서 기원한 말이라고 한다.

중국 하나라 우(禹)임금 때, 제후 중 한명인 유호씨(有扈氏)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우임금은 아들 백계를 보내 유호씨의 공격을 막게 했는데, 백계는 유호씨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참패의 원인은 많았지만, 백계는 참패의 원인으로 다른 것을 말하지 않고 자기 탓으로 돌리며, “나는 유호씨에 비하여 영토도 작지 않고 백성들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는 나의 덕이 부족하고 지도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백계는 더욱 분발하여 검소하게 생활하며, 백성을 아끼고 덕이 있는 사람을 우대하며 재능 있는 사람을 널리 기용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나자 유호씨가 스스로 복속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오다. 어떤 일에 실패하였으나 힘을 축적하여 다시 그 일에 착수하는 것을 비유함.

진나라 말기 유방과 항우가 천하의 패권(霸權)을 다툴 때, 유방이 군사력이 항우보다 우세하게 되자, 항우에게 사신을 보내어 강화(講和)를 맺고 홍구 서쪽은 유방이, 동쪽은 항우가 차지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유방의 지장(智將) 장량은 “공께서는 지금 천하의 땅 중에서 태반이나 차지하고 있으며, 제후들도 모두 공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항우는 지지하는 사람이 없어 고립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시기를 놓치면 다시 도모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말했다. 유방은 장량의 말이 옳다고 여겨 군사를 이끌고 가서 항우를 공격하여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국면을 만들었다. 항우는 강동의 정예병들과 전투를 벌이다 오강으로 도망갔다. 그 때 그곳 정장(亭長)으로부터 “강동으로 돌아가 재기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8년 전 강동의 8,000자제들에게 부귀영화를 약속하였는데, 이제 내가 무슨 면목으로 강을 건너 돌아갈 것인가?”라고 대답하고 오추마와 남은 병사들은 오강을 건너게 하고 자신은 자결하였다. 항우가 죽은 지 1,000년 후 시인 두목은 오강의 客舍에서 항우가 훗날을 다시 도모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題烏江亭 – 杜牧(두목)

勝敗兵家事不期 승패는 병가의 일이라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包羞忍恥是男兒 수치를 참을 수 있는 이가 진정한 사내라네.
江東子弟多才俊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어찌 되었을까.

대롱의 구멍으로 하늘을 엿본다는 말로 좁은 식견으로는 광대한 사물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음을 의미함.

춘추시대 말기 편작(扁鵲)이라는 뛰어난 명의가 있었다. 그가 괵이라는 작은 나라에 간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 나라의 태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편작은 궁궐의 어의를 만나 태자의 병에 대해 듣고 태자를 살려보겠다고 하였다. 괵 나라의 어의는 깜짝 놀라며 편작을 비웃었다. 편작은 “당신의 의술은 대롱을 가지고 하늘을 엿보며(用管窺天) 좁은 틈새로 상황을 살피는 것과 같이 도저히 전체를 간파한다고 할 수 없소. 나의 의술은 전체를 보는 것이요. 못 믿겠으면 다시 한 번 태자를 진단해 보시오. 양쪽 허벅다리를 쓰다듬어 가다가 음부에 닿으면 아직 그곳이 따뜻할 것이오.”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다시 살펴보니 과연 편작의 말대로였다. 마침내 편작이 침을 놓자 태자가 살아나 며칠 후 건강을 되찾았다. 이 일로 편작이 죽은 이도 살려낸다는 소문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자 편작이 겸손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죽은 이를 소생시킨 것이 아니라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고친 것뿐입니다.”

– 사기.편작창공열전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말로, 책을 읽고 학문을 탐구하기에 좋다는 뜻.

한유(韓愈)가 아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지은 시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 중에 등장한다.

時秋積雨霽 철은 가을 되어 장마는 그치고
新凉入郊墟 서늘한 기운은 마을에 가득하네.
燈火秒可親 이제 등불을 가까이 할만 하니
簡編可卷舒 책 펼칠 만 하게 되었구나.

자하가 거보 땅의 우두머리가 되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두르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려 하지 마라. 서두르면 달성할 수 없고, 작은 이익을 보려 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해골을 빈다는 뜻으로, 늙은 재상(宰相)이 나이가 많아 조정에 나오지 못하게 될 때 임금에게 그만두기를 주청(奏請)함을 이르는 말.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에게 쫓긴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고전하고 있을 때, 유방은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하였다. 항우는 이에 응하려고 했으나 모사 범증이 반대하였다. 유방의 참모 진평은 이 소식을 듣고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갈라놓을 꾀를 내어, 항우가 사신을 보내오자 진평은 정중히 사신을 맞이하며 범증의 안부를 물었다. 사신이 “나는 초패왕 항우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요.” 라고 하자 진평은 짐짓 놀란 체하면서 잘 차린 음식을 초라한 음식으로 바꾸게 한 뒤 말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자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범증은 크게 화가나,
“천하의 대세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뒷일은 대왕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원컨대(대왕께 바친 제 해골을 구걸하오니) 제 해골을 돌려주시어 졸오로 돌아가게 해 주시옵소서.(天下事大定矣 君王自爲之 願賜骸骨歸卒伍)”라고 하였다. 항우는 어리석게도 진평의 이간계에 걸려 유일한 모신(謀臣)을 잃고 말았다. 범증은 팽성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등창이 터져 75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졸오 : 당시 호적에서 다섯 호를 ‘오(伍)’라 했고, 3백 호를 ‘졸(卒)’이라고 칭했다. 즉 이 말은 ‘평범한 백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는 뜻이다.

홍문연(鴻門宴)은 항우가 홍문에서 연회를 열어 유방을 해치려 했으나 유방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홍문연은 겉보기엔 화려한 잔치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살의가 가득 차 겉과 속이 다른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며, 홍문지연, 홍문지회라고도 한다.

秦始皇(진시황)이 죽고 호해가 황제가 되었는데, 호해는 정치는 환관 조고에게 맡기고 술과 여자만을 찾으니, 백성들은 더욱더 살기 어려워지고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자 옛 초나라 땅에서는 항우가 그의 숙부 항량과 함께 봉기하였고, 그 보다 조금 늦게 沛(패)땅의 한미한 집안 출신 유방 역시 떨쳐 일어나 진나라 군과 싸웠다. 유방의 힘은 항우에 훨씬 미치지 못했으나 장량의 지혜를 힘입어 항우보다 먼저 진나라의 도성인 咸陽(함양)에 먼저 진입했다. 이에 앞서 항우는 대의명분을 위해 초나라의 옛왕족을 찾아 회왕으로 옹립하였는데, 회왕은 함양에 먼저 들어간 자가 관중의 왕이 될것이라 하였었다.
유방이 이미 함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항우는 대노하여 40만 대군으로 유방을 치고자 했다. 그러나 유방의 군대는 항우의 군대와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방은 장량과 번쾌 등 백 여명의 군사만 데리고 홍문(鴻門)에 주둔하고 있는 항우를 찾아가 자기를 臣이라 칭하면서 사죄하니 항우는 기뻐하며 잔치를 벌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홍문지연이다. 항우의 책사 범증은 이 연회에서 자주 항우에게 눈짓을 하여 빨리 유방을 죽일것을 청하였으나 항우가 머뭇거리자, 장수 項莊(항장)을 시켜 칼춤을 추면서 기회를 보아 유방을 죽일것을 명하였다. 유방과 함께 왔던 장량은 낌새를 채고 장수 번쾌를 들여보내 호위하게 하였다. 잠시 후 유방은 측간에 가는 척하고 나와 뒷일을 장량에게 맡기고 그 길로 달아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남쪽은 배, 북쪽은 말’이라는 말로 중국 교통수단의 특징을 말한 것이지만, 전하여 ‘사방으로 늘 여행함.’ 또는 ‘바쁘게 돌아다님.’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중국 남쪽은 수로가 많아 수운이 발달하였고, 북방은 평원이 많아 육운이 발달하였는데, ‘회남자'(淮南子)에 “호인은 말을 타는 데 적합하고 월인은 배에 익숙하다.”(胡人便於馬 越人便於舟)라는 구절에서 남선북마가 유래했다고 한다. 호인(胡人)은 북쪽 변방에 살고, 월인( 越人)은 강남에 있던 월(越)나라 사람을 말한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은 육지전(陸地戰)에 강하고 수전(水戰)에 약한 조조군을 촉의 제갈량과 오나라의 주유가 수전으로 맞서 이긴 것으로 유명하다.

단장(斷腸)은 ‘창자가 끊어지다’라는 뜻으로 견딜 수 없이 심한 슬픔이나 괴로움을 비유한 것이다. 이 성어의 유래는 세설신어에 보인다.
진나라의 장수 환온이라는 사람이 촉나라로 가던 도중 한 병사가 양자강의 삼협(三峽)에서 원숭이 새끼를 싣고 가자 그 어미가 새끼를 그리워하여 울부짖으며 백여리나 달려와 배에 뛰어 들더니 죽고 말았다.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도 슬퍼했던 나머지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