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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의 글 태그

귀를 막고 종을 훔치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혼자 모른척 함’, ‘자신이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 ‘얕은 꾀로 남을 속이려 해도 소용이 없음’이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눈 가리고 아웅하다’ 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다(以掌蔽天)’와도 의미가 비슷하다.

이 고사성어는 여씨춘추에 보인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범씨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큰 종이 있었다. 어느 날 범씨 가문이 몰락하자 한 백성이 종을 훔치려 하였다. 워낙 종이 커서 가지고 갈 수가 없자 종을 깨부숴 가져가려고 망치로 내려쳤다. 당연하게도 큰 소리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깜짝 놀라 제 귀를 틀어막고 다시 종을 내려쳤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종소리를 들었고, 그 백성은 결국 그 자리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제 귀를 틀어막든 그러지 않든 종을 내리치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자명한 사실을 스스로만 모른체하여 감추려 하는 태도가 참으로 어리석다.

강한 쇠뇌에서 발사된 화살의 끝. 힘찬 활에서 발사된 화살은 처음에는 철판도 뚫을 듯 강력하지만 마지막에서는 힘이 떨어져 비단조차 뚫을 수 없다는 뜻으로, 처음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간 데 없고 맥없이 끝을 맺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전한시대(前漢時代) 한고조 유방은 흉노를 정벌하려다 패하고는 흉노와 화친하고 공물을 바쳐왔다. 그래도 때로는 강경한 흉노의 선우(왕)들은 화친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지속적으로 국경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이윽고 한무제 시대에 이르러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흉노족을 응징하기로 하고 대신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다. 이때 어사대부 한안국은 흉노를 공격하는 원정계획을 반대하며 말했다. 
“신이 듣기로 회오리 바람도 기세가 잦아들면 깃털조차 날릴 수가 없고, 강한 쇠뇌도 끝에 가서는 얇은 비단조차 뚫을 수 없다고 합니다(强弩之末力不能入魯縞). 흉노를 공격하려면 수천 리를 행군해야 하는데, 강한 군대라 해도 그렇게 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강노지말(強弩之末)이다. – 사기(史記).한장유열전

사람의 말이 두렵다. 소문이나 여론, 또는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무서움을 뜻하는 말.

將仲子兮 無踰我園 사랑하는 님이여, 우리 뜰 넘어와 박달나무 꺽지 마셔요.
豈敢愛之 畏人之多言 어찌 박달나무가 아깝겠어요. 사람들의 말이 많아 질까 두렵습니다.
仲可懷也 人之多言 亦可畏也 님도 그립지만 사람들의 많은 말도 역시 두렵답니다. – 시경(詩經).정풍(鄭風). 장중자(將仲子). 마지막장

시경 정풍(鄭風)은 대부분 연애시(戀愛詩)로 이루어져 있는데, 장중자라는 제목의 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며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마음을 노래하였다.

연못을 말려 고기를 얻는다는 말로,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장래는 생각하지 않음. 

춘추시대, 진(晋)나라 문공은 성복에서 초나라 군대와 일대 접전(BC632)을 하게 되었다. 당시 진나라는 병력이 열세였으므로, 진문공은 부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한 부하가 속임수를 써 볼 것을 권하였다. 진문공은 그 계책을 듣고 부하 이옹이라는 자에게 견해를 물었다. 이옹은 그 의견에 반대하며 말했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서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竭澤而漁 豈不獲得 而明年無魚 焚藪而田 豈不獲得 而明年無獸)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이상 임시 방편의 방법일 뿐입니다.”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다보면 도리어 화를 초래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여씨춘추.의상편.

소금 수레의 원한(怨恨). 재주가 뛰어 난 사람이라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때를 놓치거나 초야에 묻혀 재주를 썩힐 수 있다는 말.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목공 때, 손양이라는 사람은 말의 좋고 나쁨을 잘 분별하였다. 그가 워낙 말을 잘 알아보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백락(伯樂)이라고 불렀다. 백락은 천마를 주관하는 별자리 이름이다. 어느날 백락은 채찍질을 당하며 소금 수레를 끄는 말을 만났다.
“아! 안타깝도다! 용맹한 장수와 함께 천하를 누빌 말이 소금수레를 끌고 있구나.”
라고 백락이 한탄하자 말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 숙여 응답했다는 이야기에서 ‘鹽車之憾(염거지감)’이라는 고사(故事)가 유래했다.

항룡유회亢龍有悔란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후회가 있다.’라는 뜻으로 주역에 나온다. 항룡은 지나치게 높은 용, 곧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으며 이제 내려올 길 밖에 없음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부귀영달이 극도에 달한 사람은 쇠퇴할 염려가 있으므로 행동을 삼가야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공자(孔子)는
“항룡은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높아 교만하기 때문에 자칫 민심을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항룡의 지위에 오르면 후회하기 십상이다. 즉, 일을 할 때에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지, 무작정 밀고 나가다가는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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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차면 이지러진다. 무슨 일이든 절정에 달한 뒤에는 쇠퇴하게 된다.
 
범저는 魏(위)나라 사람인데, 달변으로 진나라 昭王(소왕)의 신임을 얻어 재상의 자리에 올라 오랜기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권력 말기 범저가 추천한 정안평과 왕계라는 자가 모두 진나라에 큰 죄를 지었다. 정안평은 범저의 추천으로 장군이 되었으나 조나라에 투항하였으며, 왕계는 다른 제후와 내통하다가 사형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연나라의 채택이라는 자가 범저를 찾아왔다. 채택은 범저에게 지금은 왕의 신뢰와 총애를 받고 있지만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지듯이(日中則移 月滿則虧) 이제 물러나지 않는다면 더 큰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범저는 채택이 말이 옳다고 여겨 채택을 천거하고 병을 핑계로 물러나 평안한 말년을 보냈다. – 사기.범저채택열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는 뜻이다. 3월의 꽃샘추위 같은 날씨를 비유하여도 자주 쓰이지만, 시기는 좋은데 상황은 그리 좋지 않을 때를 비유하여 뉴스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고사성어이다. 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 성어로도 쓰인다.

닭의 소리를 내고 개 모양을 하여 도적질 하다.
① 잔재주를 자랑함. ② 비굴한 꾀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짓. ③ 行世하는 사람이 배워서는 아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④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하찮은 재주도 언젠가 귀하게 쓰일 데가 있다.

맹상군(孟嘗君)은 춘추전국 시대 제나라 설(薛)땅의 영주이다. 그는 매우 현명하였고, 자신을 찾아오는 빈객들을 잘 대접하여 갖가지 재주 있는 빈객이 300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웃의 진(秦)나라 소왕(昭王)은 이러한 소문을 듣고 맹상군을 진나라로 초대하였다. 당시 진나라는 매우 강하였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이 맹상군은 소왕의 초대를 받아 들여 자신의 빈객 여러명과 함께 진나라로 갔다. 맹상군은 진나라의 소왕을 만나 갖가지 재물과 여우 겨드랑이의 흰털로 만들었다는 가죽옷 호백구(狐白裘)를 바쳤다. 소왕은 매우 기뻐하며 현명한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맹상군이 자신의 나라인 제나라를 위해 일할 것을 두려워해 계략을 짜내 죽이려고 하였다. 맹상군은 이러한 음모를 알게되자, 소왕이 몹시 사랑하고 있는 애첩 연희를 만나 자신을 살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자 애첩은 진왕에게 바친 호백구를 요구하였는데, 맹상군은 다른 호백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때 함께 온 빈객 중 개 흉내를 내어 좀도둑질을 잘 하던 자가 있어, 밤 중에 삼엄森嚴한 경계를 뚫고 진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 바쳤던 호백구를 다시 훔쳐내었다. 맹상군이 호백구를 소왕의 애첩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맹상군은 풀려나자 바로 말을 몰아 제나라로 달아나기 시작하여, 진나라의 마지막 관문 함곡관에 이르렀다. 한편 진나라 소왕은 뒤늦게 맹상군을 풀어 준 것을 후회하며 사람을 시켜 그를 뒤쫓게 하였다. 함곡관의 관문은 첫 닭이 울어야 문을 여는 법이 있었는데, 맹상군이 함곡관에 도착하였을 때는 아직 첫 닭이 울 때가 아니라 거의 잡힐 지경에 이르러 매우 곤란하였다. 그 때 또 다른 빈객 중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닭의 울음 소리를 흉내내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 사기 맹상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