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한자성어"의 글 태그

적벽대전은 오나라의 손권과 유비가 연합하여 조조의 백만대군에 대항한 전투였다. 조조의 엄청난 세력에 오나라의 주유는 한가지 계책을 내었다. 오나라의 유능한 장수 황개에게 거짓으로 죄를 뒤집어 씌우고, 곤장을 때렸다. 만신창이가 되어 옥에 갇힌 황개는 조조에게 항복문서를 전했고, 이것이 적의 고육지계인 것을 꿈에도 생각못한 조조는 황개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날 밤 배 한척이 조조의 수 많은 배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오자 조조는 황개의 배일 것이라 생각하고 환영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배는 기름을 가득 실은 배였고, 조조의 진영 근처에서 불에 타올라 조조의 백만대군을 무력화 시켜버렸다. 연합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과하지욕은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이라는 뜻으로 큰 뜻을 위해서 사소한 굴욕은 참고 견뎌내다는 의미이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이 있는 세 명의 공신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서한삼걸西漢三杰’이라 불리는 소하, 장량, 한신이다. 그 가운데 왕가의 자손 출신인 한신의 이야기이다.
한신이 젊은 날 고향 회음에서 큰 칼을 차고 저잣거리를 가고 있는데 불량배들이 앞을 가로막고 “네가 용기가 있다면 차고 있는 그 큰 칼로 나를 찔러 봐라! 그렇지 않으면 내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지나가라” 고 하며 시비를 걸어왔다. 한신은 분을 참지 못해 살인자가 되어 도망 다니기 보다는 잠깐의 치욕을 택했다. 이 때 나온 고사성어가 ‘과하지욕袴下之辱’이다. 이 고사성어는 사소한 시비는 참고 넘어갈 수 정도로 한신이 큰 뜻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한신처럼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큰 치욕은 몰라도 종종 작은 모욕을 받거나 자존심에 상처 입을 때가 있다. 받은대로 되돌려주고 자존심을 회복할 것인가? 참고 견딜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든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할 것이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상록수로 사시사철 항상 푸르면서도 서로 비슷하게 생겨 흔히 가까운 벗으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송무백열이라고 하면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 되어 기뻐할 때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송무백열과 비슷한 뜻의 사자성어로는 혜분난비(蕙焚蘭悲)가 있는데, ‘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벗의 불행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국정농단을 한자로 쓰면 國政壟斷이 된다. 농단의 농을 어감상 ‘弄(희롱할 롱)’이 아닐까 했는데, 壟(언덕 롱)이다. 농단(壟斷)은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오른 언덕’이라는 뜻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로 맹자 공손추장구에 보인다.

전국시대 제나라 선왕 때, 맹자는 제나라에서 수년간 머물렀으나 왕도정치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귀국을 결심했다. 선왕은 맹자에게 높은 봉록을 줄터이니 제나라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제의 했으나 맹자는 농단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맹자는 이어 농단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한 욕심많은 교활한 사나이가 시장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높은 언덕(농단壟斷)에 올라가 시장을 내려다 보고는 이익이 날 만한 것들은 모두 독차지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이 사나이를 비난하였고, 관리는 그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농단’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차지함’이라는 속뜻이 생기게 되었다. 국정농단이란 좋은 자리에서 이익을 독점하듯 나라의 정사를 마음대로 쥐락펴락 한다는 뜻이다.

병법 36계의 서른네번째 계책으로, 제 몸을 괴롭히는 계책이다. 일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면서 까지 어쩔 수 없이 하는 수단을 말하며 고육지계(苦肉之計)라고도 한다.

1. 하이힐은 17~18세기에 유럽의 귀부인들이 비가 올 때 드레스를 더럽히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한다.
2.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물량이 쌓이자 건설업체들은 이자 부담을 감수하고 잔금을 유예해 주는 등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이 표현과 혼동해서 사용되는 성어로 궁여지책(窮餘之策)이 있다. 궁여지책은 ‘궁한 나머지 짜낸 계책’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몸을 상해가면서 까지 꾸며내는 계책이라는 뜻인 ‘고육지책’과는 구별된다.

1. 그는 사업 비용을 조달할 길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집을 팔기로 했다.

호구지책에서 ‘호구(糊口)’란 ‘입에 풀칠을 하다’라는 뜻으로,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방책(方策)을 뜻한다.

1. 호구지책을 마련하다.
2. 원고지 한 장에 겨우 기백 환을 받아서 근근이 호구지책을 세워 가고 있는 우리네의 형편에 무슨 여유가 있다고…. (정비석. 비석과 금강산의 대화)
3. 남의 글 옮겨 갖고 호구지책을 강구(講究)하는 주제에 생일잔치가 지나치게 성대하면 되레 웃음거리가 될 텐데. (이병주. 행복어 사전)

네 가지가 알고 있다는 뜻으로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말이다.

후한서에 보인다. 중국 한나라 때 양진이 동래 태수로 임명 되었을 무렵, 창읍의 현령 왕밀이 찾아와 황금 열 근을 바쳤다. 왕밀은 예전에 양진의 추천을 받아 벼슬을 얻은 사람이다. 양진이 말했다.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걸 잊었는가?” 왕밀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허물없는 옛정으로 올리는 것이고,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모를것입니다.”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고地知, 그대가 알고子知, 내가 아네我知.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 하는가?” 하니 왕밀이 부끄러워하며 나갔다고 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아무도 모르게 행한 일이라도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서로 힘이나 실력이 엇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어려움을 뜻한다.
 
백伯과 중仲은 원래 중국에서 형제를 세분하여 부르던 말로, 맏형을 백伯, 둘째를 중仲, 셋째를 숙叔, 막내를 계季라고 하니, 백중이란 첫째와 둘째라는 의미이다. 형제는 서로 비슷하게 닮아 누가 낫고 못한지를 가리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비교하여도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때 백중지세 또는 백중지간이라고 한다. 비슷한 성어로 난형난제(難兄難弟)도 있는데, 누구를 형이라 하고 아우라 할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風餐露宿은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의 숙야인가시(宿野人家詩)의 “늙으니 내세로 가는 길도 흐릿하고 기억력도 가물가물하구나,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자고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으니 허물인지 알지도 못 하겠구나(老來世路渾諳盡,露宿風餐未覺非)”에서 유래하였다. 바람막이도 없는 한데서 밥을 먹고 지붕도 없는 노천에서 이슬을 맞으며 잔다는 뜻으로, 일정한 거처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편으로 큰 뜻을 세우려는 사람이 온갖 만행의 고초를 겪음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눌언민행은 ‘말은 더디지만 행동은 민첩하다.’는 뜻이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우니, 되도록 말은 느리게 하되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는 뜻이다.

“君子欲訥於言而敏行.”
군자는 말은 더디게 하고 실천은 민첩하게 하려 한다. – 논어 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