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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으로 쉬지 않고 연달아 흐르는 시내라는 뜻으로 줄여서 장천(長川)이라고도 한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늘’ 이라는 의미이다. 주구장창이라는 말은 주야장천의 잘못된 말이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께서 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 – 논어.
* 川上은 냇물 위가 아니라 냇가이다. 장소를 가리키는 말 뒤의 上은 그 언저리라는 뜻이다. 逝者如斯夫의 夫는 감탄 종결사이다.

조국 “민간인 사찰은 삼인성호…정치적 이용 개탄스러워” – 조선일보.2018.12.31.

연말 국회에 출석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말이다.
삼인성호는 중국 전국시대의 고사이다. 위나라의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던 신하 방공이 태자와 함께 조나라의 한단으로 인질로 가게 되었다. 방공은 떠나기 전에 왕에게 물었다.
“한 사람이 번화한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 두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있다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 세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있다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하길 “만일 세 사람이 말한다면 믿을 것 같소.”
그러자 방공은,
“번화한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없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모두 같은 말을 한다면 없는 호랑이도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가려는 한단은 위나라의 저잣거리 보다 멀고, 저를 헐 뜯는 사람은 세 사람 보다 많을 것이니, 원컨대 왕께서는 다른 신하의 말을 잘 살피고 신을 헐뜯는 말을 믿지 마시길 바랍니다.”
왕은 알겠노라 약속을 했으나, 훗날 방공이 한단에서 돌아왔을 때, 끝내 왕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삼인성호는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국 수석이 말한 삼인성호가 뜻하는 바는 어떤 진실의 여부와는 관계없는 일방적인 주장이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보도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吟味하고 생각하는 것을 반추라고 한다. 원래 반추란 반추위反芻胃를 가진 소나 염소 등이 한 번 삼킨 먹이를 게워내어 되새기는 일을 가리킨다.

지록위마는 교수신문에서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다. 그 해는 세월호 참사 사건이 있었던 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곽복선 경성대 중국통상학과 교수는

“2014년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 2014.12

고 했다.
지록위마는 여러 정치상황에서도 많이 사용되는데, 그 유래가 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라는 뜻이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 보인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는 시황제의 장자(長子) 부소를 죽이고 시황의 막내 아들 호해를 즉위시켰다. 그 후 경쟁 상대인 승상 이사(李斯)를 제거하고 자신이 승상이 되어 실권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였다. 왕이 될 욕심까지 생긴 조고는 자기를 반대하는 신하를 가려내기 위해 어느 날 사슴을 가지고 와서 호해에게 “말을 바칩니다.” 하니 호해가 웃으며 “이것은 사슴이 아니냐?” 하고 좌우에게 물어 보니, 어떤 자는 ‘말입니다.’라고 하여 조고의 말을 따랐고, 그 중에는 ‘아닙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고는 아니라고 말한 사람들을 후에 죄를 씌워 죽였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록위마는 윗사람을 농락하고 권세를 함부로 부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우겨 강제로 믿게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권력이나 돈 등을 이용해 진실을 가리는 행동을 비판할 때, 또는 윗 사람을 농락하고 마음대로 권세를 휘두르는 상황을 비유하거나 그러한 사람을 가리켜 사용한다.

지록위마를 잇는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 2위는 ‘삭족적리削足適履’다. 삭족적구라고도 한다. 삭족적리는 ‘발을 깎아 신발을 맞춘다’는 뜻으로 합리성을 무시하고 억지로 적용하는 것을 비유한다. 원칙이 없는 사회를 비유하거나, 실제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부적합한 규정에 무리하게 끼워 맞추려고 애쓰는 아둔한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삭족적리는 회남자에 보이는데, 신발을 사러 간 남자가 신발이 작아 자신의 발에 맞지 않자 자기의 발을 깎으려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아무리 해도’ 또는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라는 뜻으로 쓰는 말인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처럼 주로 부정을 뜻하는 말이 함께 쓰인다.
  도무지는 조선시대에 집안에서 또는 개인이 사사로이 행하던 형벌 중에 ‘도모지塗貌紙’라는 벌에서 유래한 말이다. ‘도모지(塗貌紙)’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얼굴에 종이를 바르다’는 뜻으로, 처형하려는 사람을 움직이 못하도록 몸을 묶고 물을 묻힌 한지를 얼굴에 겹겹으로 착착 바른다. 그러면 도모지를 당하는 사람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종이의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을 못 쉬어 죽게 되는 형벌이다. 천주교 박해 때도 이 도모지가 사용됐다고 전하는데, 이러한 끔찍한 형벌인 ‘도모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도무지’는 그 형벌만큼이나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