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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으로 아무 데나 함부로 글자를 쓰는 일을 낙서라고 한다.
낙서라는 낱말은 떨어질’락(落)’과 글’서(書)’가 합쳐져 이뤄진 것으로 ‘떨어진 글’이라는 뜻이다.

이 낙서는 일본 에도(江戶) 시대 때 힘없는 백성들의 항거수단으로 민초(民草)들의 소리를 적은 쪽지를 길거리에 슬쩍 떨어뜨려 놓은 것을 ‘오토미 부시(落文)’라 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후기에 낙서가 나타났는데, 일반 백성들이 돌이나 바위에 당시의 사회상을 낙서로 새겼다고 한다.

공자(孔子)의 제자 증자(曾子)가 남루한 옷을 입고 노(魯)나라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을 때, 당시 노나라의 임금이 듣고는 증자에게 봉토를 주어 다스리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증자는 한사코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대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임금께서 스스로 내리신 것인데, 어째서 완강히 사양하시었소?” 증자가 대답했다. “저는 남이 베푸는 것을 받은 사람은 항상 남을 두려워하게 되고, 남에게 준 사람은 항상 교만해진다고 들었습니다. 설령 임금께서 내게 주신 것이 있다고 해서 내게 교만하시지는 않겠지만 내가 어찌 임금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吾聞受人施者常畏人, 與人者常驕人. 縱君有賜, 不我驕也, 吾豈能勿畏乎?”) 나는 부유하면서 남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가난하지만 굽힘이 없는 것이 낫습니다.” ( 吾與其富而畏人, 不若貧而無屈. ) 공자가 그 말을 듣고 “증삼의 말이 절개를 온전히 하기에 족하다.”라고 했다.

기별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다는 뜻이다.
기별이란 원래 조선 시대에, 승정원에서 재결 사항을 기록하고 서사(書寫)하여 반포하던 일종의 관보를 말한다. 이 관보는 그 전날 처리한 일을 적어서 매일 아침마다 널리 반포했으므로 어떤 일이 확실히 결정된 것을 확인하려면 기별지를 받아야 알 수 있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결정이 기별지에 반포괴어야 일의 성사여부를 알 수 있었으므로 ‘기별이 왔는가?’ 하는 말은 일의 성사여부를 묻는 말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