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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사납다.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에게 있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는 말.

기원전 517년. 공자의 고국인 노나라에서는 조정의 실세인 대부 계손자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백성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공자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고향인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를 향하고 있었는데, 태산 기슭을 지나가고 있을 때 한 부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라 했다. “부인, 어인 일로 그렇듯 슬피 우십니까?” 부인이 대답하길, “여기는 아주 무서운 곳이랍니다. 수년 전에 저희 시아버님이 호환(虎患)을 당하시더니 작년에는 남편이, 그리고 이번에는 자식까지 호랑이한테 잡아 먹혔답니다.” “그러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십니까?” “여기에는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 당하거나 못된 벼슬아치에게 재물을 빼앗기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로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들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것을….”

– 예기

앵커브리핑 : 가정맹어호

맑은 날은 밭을 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다. 부지런히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공부(工夫)함을 이르는 말.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숙부와 함께 지내게 된 제갈량(제갈공명)은 숙부마저 전쟁으로 세상을 떠난 후 융중이라는 곳에 거주하며 청경우독(晴耕雨讀)하였다 한다. 당시 후한 말기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도 제갈량의 그 오랜 우독(雨讀)의 세월은 유비와 함께 천하삼분지계를 실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술지게미나 쌀겨와 같은 험한 음식을 함께 먹은 아내. 가난할 때부터 함께 고생해 온 아내

후한의 광무제(光武帝)의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는 미망인(未亡人)이었다. 그녀는 대사공(大司公)인 송홍(宋弘)을 마음에 두고 좋아하고 있었다. 광무제는 이것을 눈치 채고 어느 날 송홍을 불러 마음을 떠 보기를 “속담 중에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사람이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송홍이 대답하여 말하기를“가난하고 미천할 때의 사귐은 잊을 수 없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먹던 아내는 집에서 내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謂弘曰 諺言에 貴易交하고 富易妻하다라하니 人情乎아. 弘對曰 貧賤之交는 不可忘이요 糟糠之妻는 不下堂이니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 나라에 간신배(奸臣輩)가 많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음. 어진 신하가 옳은 정책(政策)을 군주께 아뢰고자 해도 조정안에 사나운 간신배가 버티고 있으면 불가능함을 비유한 말.

송나라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술집이 있었다. 주인 장씨는 손님들에게 정성으로 접대하고, 술의 양도 속이지 않고, 간판이 되는 깃발을 높이 세워 두었는데도 술은 점점 팔리지 않고 시어만 갔다. 이상스런 일이어서 잘 알고 지내는 마을 어른 양천에게 “도대체 술이 왜 시어집니까?”하고 물었더니 양천은 “자네 집의 개가 사나운가?”하였다. 장씨가 반문하길 “개가 사나운 것하고, 술이 안 팔리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양천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개를 무서워하기 때문이지. 어린아이에게 돈을 주어 술을 사오라고 했을 때, 개가 뛰어나와 으르렁 거리며 물려고 한다면 어린아이가 들어가서 술을 사올 수 있겠는가?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질 때까지 안 팔리게 된다네.”

– 한비자

앵커브리핑 링크 : 구맹주산

책을 읽는 데는 눈으로 보고(眼到), 입으로 읽고(口到),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心到).

책을 읽을 때는 주위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을 집중하라는 말로, 삼도란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를 가리킨다. 마음과 눈과 입을 함께 기울여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독서삼매(讀書三昧)라고도 한다.
본래 삼매(三昧)란 불교에 있어서의 수행법으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감각적 자극이나 그 자극에 대한 일상적 반응을 초월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매에 빠지면 옆에서 벼락이 쳐도 모르는 것이다. 삼도(三到)도 그런 경지를 의미한다. 책을 읽는, 즉 독서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한 말이 이 독서삼도이다.

– 두산백과

글을 백번을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나타남. 뜻이 어려운 글도 자꾸 되풀이하여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됨을 이르는 말.

중국 후한 말 동우라는 사람은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일을 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手不釋卷) 부지런히 공부하여 임금님의 글공부를 돕는 황문시랑(黃門侍郞)이란 벼슬에 올랐다. 동우의 명성이 널리 퍼지자 각처에서 그 학덕을 흠모하여 동우에게 제자 되기를 청했다. 그러자 동우는 “나에게 배우기보다 그대 혼자 책을 몇 번이고 자꾸 읽어 보게. 그러면 저절로 그 뜻을 알게 될 걸세.” 하고 넌지시 거절하였다. 이에 그 제자가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니 동우가 다시 “마땅히 삼여로써 책을 읽어야 하네(讀書三餘). 삼여(三餘)란 겨울과 밤, 그리고 비가 올 때라네.”며 일러주었다고 한다.

– 삼국지

배에 새기어 칼을 찾음. 시대의 변화(變化)를 모르고, 융통성(融通性)이 없어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음.

옛날 초나라 사람 중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좋은 칼을 하나 지니고 있었는데, 그만 칼을 물속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배에 작은 칼로 표시를 하고 말하길 “이곳이 내 칼이 떨어진 곳이다.” 하였다. 마침내 배가 멈추자 그는 새긴 곳을 보고는 물속으로 들어가 칼을 찾으려고 했다. 배는 이미 지나왔는데 칼은 그 자리에 있으니 이렇게 칼을 찾는다면 어리석지 아니한가? 옛날의 법으로써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대는 바뀌었으나 법은 바뀌지 않았으니 이런 방식으로 정치를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 여씨춘추

명규(命圭)를 잡으실 때에는 몸을 굽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셨으며, <명규(命圭)를 잡는 위치는> 위로는 읍(揖)할 때와 같게 하시고, 아래로는 물건을 줄 때와 같게 하셨으며, 낯빛을 변하여 두려워하는 빛을 띠시고, 발걸음을 좁게 떼시어 발꿈치를 끌듯이 하셨다. 연향(燕享)하는 자리에서는 온화한 낯빛을 하시고 사사로이 만나보실 때에는 화평하게 하셨다.(執圭하사대 鞠躬如也하사 如不勝하시며 上如揖하시고 下如授하시며 勃如戰色하시며 足蹜蹜如有循이러시다. 享禮에 有容色하시며 私覿에 愉愉如也러시다.)
– 논어.향당.5장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겨우 살아남.

중국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명신 굴원은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정치가였으나, 다른 이의 모함을 받아 신임을 잃고 멱라수에 돌덩이를 품에 안고 몸을 던져 죽었다. 그는 이러한 아픔을 담아 낸 이소(離騷)라는 명시를 남겼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雖九死 猶未其悔).’ 후에 중국의 명문장들을 모은 문헌인 문선에 이소를 수록하면서, 문선을 편집한 유량주는 이소의 저 구절에 주를 달기를 “아홉 번 죽어서 한 번을 살아남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직 후회하고 원한을 품기에는 족하지 못하다”라고 하였는데, 그 이후로 구사일생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