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제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도중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노나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르고 제나라로 돌아왔다. 맹자의 제자 충우가 ‘어머니 장례에 쓰인 관곽의 나무가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니 맹자가 대답하길,
“옛날에는 관곽에 법도가 없었지만, 중고(中古)시대에 관은 일곱 치, 곽은 그에 알맞게 하도록 했다. 이것은 단지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사람의 마음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이 허용하고 재력이 있으면 옛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했으니 어찌 나만 홀로 그렇게 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군자로부터 듣기로는 천하 때문에 그 어버이에게 검소하게 하지 않는다 했다.(吾聞之君子 不以天下儉其親).”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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