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공손추장구하"의 글 태그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 휴(休) 땅에 머무를 때, 제자 공손추가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도 봉록을 받지 않는 것이 옛 법도인지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그렇지 않다. 나는 숭(崇)에서 왕을 만나 이야기를 한 적이 그 때 나는 제나라를 떠날 마음을 굳혔다. 그 마음이 변하지 않길 원했기 때문에, 봉록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제’나라가 전쟁에 휘말려 그만두기를 청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제나라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지만 그것은 내 뜻이 아니었다.(久於齊, 非我志也.)”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14장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자 충우가 ‘전에 선생님께서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사람을 탓하지도 않는다하였는데, 지금 제나라를 떠남에 기쁘지 않은 기색이 있는 듯합니다.’하니 맹자가 대답하길,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오백년에 반드시 왕자가 나오니, 그 사이에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칠 사람이 있다. 지금 주나라 이래로 칠백년이니, 이미 그러한 사람이 나타날 만하다. 만약 하늘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려고 한다면 지금 세상에 나 이외에 그 누가 있겠는가?(當今之世 舍我其誰也?) 내 어찌 기뻐하지 하겠는가?”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13장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며 주읍에 사흘을 머무르니, 윤사라는 이가 ‘왕이 탕왕(湯王)이나 무왕(武王)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면 이것을 밝지 못한 것이고, 알면서도 왔다면 이는 은덕(恩德)을 구한 것이다. 천리 길을 와 왕을 만나고 뜻이 맞지 않는다 하여 떠나면서 주읍에서 사흘씩이나 머문 까닭은 무엇인가?’ 하니 맹자가 말하길,

“천리 길을 와 왕을 만난 것은 내가 바란 것이지만, 뜻이 맞지 않아 떠난 것은 부득이 해서였으며, 주읍에 사흘을 머문 까닭은 왕이 마음을 고쳐 나를 돌아오게 할 것을 바라서였다. 그러나 왕이 나를 쫓아오지 않으니, 그제서 나는 미련 없이 떠날 생각을 가진 것이다. 나는 임금에게 간언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노해서 얼굴에는 화난 기색을 보이며 하루 종일 온 힘을 다해 떠나는 그런 졸장부(拙丈夫)가 아니다.”

하니 윤사가 자신이야말로 소인이라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12장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나 제나라의 서울에서 가까운 주읍(晝邑)에서 머물렀다. 그때 제선왕을 위해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는 것을 만류(挽留)하려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러나 맹자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자리에 기대 누워 있으니, 이를 불쾌하게 생각한 그 사람이 선생님께서 나를 거절하시니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자, 맹자가 말하길,

“일찍이 노(魯)나라의 목공(穆公)은 자사(子思)를 존경하여 그를 늘 옆에 모셔 두었다. 그러나 자사는 자기의 이념이 정치에 실현되지 않으면 떠나가 버리려고 하였기 때문에, 목공(穆公)은 늘 현명한 사람을 자사(子思)의 측근에 보내서 자사의 의견을 들어서 정치에 반영시키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것에 비하면 당신이 나를 거절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당신을 거절한 것인가?”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11장

맹자가 제나라에 오래 있었으나, 도(道)가 행하여지지 않으니,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가려 하였다. 제선왕은 시자(時子-제나라신하)에게 맹자를 도성 안에 살게 하며, 만종의 봉록을 주어 제자를 기르고 대부와 국인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고 싶다고 하며 맹자에게 자신의 그러한 뜻을 전해 줄 것을 원하였다. 시자가 맹자의 제자에게 왕의 뜻을 전하였는데, 맹자가 제자에게 말하길

“만일 내가 부를 원했다면 십만종을 사양하고 만종을 받겠는가? 또 이미 제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 그 녹(綠)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10장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한지 2년이 지나 연나라가 반란을 일으켰다. 일찍이 맹자는 제나라 왕에게 연나라의 노약자들과 빼앗은 보물들을 돌려보내고, 연나라 백성들에게 물어 어진 정치를 할 군주(君主)를 세워준 뒤에 떠날 것을 권유하였다.(양혜왕장구하11) 그러나 제나라 왕이 이를 거절한 일이 있어 연나라가 반란을 일으킨 것을 맹자에게 부끄러워하였다. 그러자 제나라의 대부 진고는 주공이 관숙에게 은을 감시하라고 하였는데 관숙이 은과 함께 반란한 일을 들어 맹자에게 왕의 일을 해명 하겠다 하였다. 진고가 맹자를 만나 ‘주공은 옛 성인입니다. 그러나 관숙에게 은을 감시하라고 시켰는데 은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니 알고서 시켰다면 이는 어질지 못한 것이고, 모르고 시켰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도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주공은 동생이요 관숙은 형이니, 주공의 허물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옛날의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고쳤지만, 지금의 군자는 허물이 있는데도 계속하며 심지어 둘러대기 까지 합니다.”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9장

제나라의 대신 심동이라는 자가 맹자에게 연(燕)나라를 정벌해도 되는지 묻자, 맹자는 된다고 대답하였다. 후에 누군가 맹자에게 제(齊)나라에게 연나라 정벌(征伐)을 권했다고 하는데 맞는지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심동이 연나라를 정벌해도 되겠습니까?’하고 묻길래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일 ‘누가 정벌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면, 나는 ‘천리만이 정벌할 수 있습니다(爲天吏, 則可以伐之).’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지금 제나라가 무도하기가 연나라와 같은데 정벌하는 것을 어찌 권했겠습니까?”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8장
천리(天吏)는 공손추장구상5에 보인다. https://haesol-memo.com/천하에-적이-없는-자는-하늘이-내린-벼슬아치이다/

맹자가 제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도중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노나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르고 제나라로 돌아왔다. 맹자의 제자 충우가 ‘어머니 장례에 쓰인 관곽의 나무가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니 맹자가 대답하길,

“옛날에는 관곽에 법도가 없었지만, 중고(中古)시대에 관은 일곱 치, 곽은 그에 알맞게 하도록 했다. 이것은 단지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사람의 마음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이 허용하고 재력이 있으면 옛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했으니 어찌 나만 홀로 그렇게 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군자로부터 듣기로는 천하 때문에 그 어버이에게 검소하게 하지 않는다 했다.(吾聞之君子 不以天下儉其親).”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7장

맹자가 제나라에서 경이 되어 등나라로 조문을 가는데, 왕이 제나라의 읍 합의 대부 왕환으로 하여금 부사로 따라가게 했다. 맹자는 왕환을 아침저녁으로 만났으나 그와 행사에 대해 한마디도 이야기 하지 않으니 공손추가 어찌된 까닭인지 물었다. 맹자가 대답하길,

“그가 이미 일을 다 처리하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夫旣或治之, 予何言哉)?”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6장

夫는 왕환, 或은 有.

맹자가 말하길,

“나는 ‘관직을 맡은 자는 그 직을 수행할 수 없으면 그만두며, 간언을 맡은 자는 말을 할 수 없으면 그만둔다(有官守者, 不得其職則去. 有言責者, 不得其言則去).’ 들었다. 나는 관직도 없고 간언을 맡지도 않았으니 나아가고 물러남을 어찌 여유 있게 하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