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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의 글 태그

맑은 날은 밭을 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다. 부지런히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공부(工夫)함을 이르는 말.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숙부와 함께 지내게 된 제갈량(제갈공명)은 숙부마저 전쟁으로 세상을 떠난 후 융중이라는 곳에 거주하며 청경우독(晴耕雨讀)하였다 한다. 당시 후한 말기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도 제갈량의 그 오랜 우독(雨讀)의 세월은 유비와 함께 천하삼분지계를 실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술지게미나 쌀겨와 같은 험한 음식을 함께 먹은 아내. 가난할 때부터 함께 고생해 온 아내

후한의 광무제(光武帝)의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는 미망인(未亡人)이었다. 그녀는 대사공(大司公)인 송홍(宋弘)을 마음에 두고 좋아하고 있었다. 광무제는 이것을 눈치 채고 어느 날 송홍을 불러 마음을 떠 보기를 “속담 중에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사람이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송홍이 대답하여 말하기를“가난하고 미천할 때의 사귐은 잊을 수 없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먹던 아내는 집에서 내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謂弘曰 諺言에 貴易交하고 富易妻하다라하니 人情乎아. 弘對曰 貧賤之交는 不可忘이요 糟糠之妻는 不下堂이니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 나라에 간신배(奸臣輩)가 많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음. 어진 신하가 옳은 정책(政策)을 군주께 아뢰고자 해도 조정안에 사나운 간신배가 버티고 있으면 불가능함을 비유한 말.

송나라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술집이 있었다. 주인 장씨는 손님들에게 정성으로 접대하고, 술의 양도 속이지 않고, 간판이 되는 깃발을 높이 세워 두었는데도 술은 점점 팔리지 않고 시어만 갔다. 이상스런 일이어서 잘 알고 지내는 마을 어른 양천에게 “도대체 술이 왜 시어집니까?”하고 물었더니 양천은 “자네 집의 개가 사나운가?”하였다. 장씨가 반문하길 “개가 사나운 것하고, 술이 안 팔리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양천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개를 무서워하기 때문이지. 어린아이에게 돈을 주어 술을 사오라고 했을 때, 개가 뛰어나와 으르렁 거리며 물려고 한다면 어린아이가 들어가서 술을 사올 수 있겠는가?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질 때까지 안 팔리게 된다네.”

– 한비자

앵커브리핑 링크 : 구맹주산

글을 백번을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나타남. 뜻이 어려운 글도 자꾸 되풀이하여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됨을 이르는 말.

중국 후한 말 동우라는 사람은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일을 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手不釋卷) 부지런히 공부하여 임금님의 글공부를 돕는 황문시랑(黃門侍郞)이란 벼슬에 올랐다. 동우의 명성이 널리 퍼지자 각처에서 그 학덕을 흠모하여 동우에게 제자 되기를 청했다. 그러자 동우는 “나에게 배우기보다 그대 혼자 책을 몇 번이고 자꾸 읽어 보게. 그러면 저절로 그 뜻을 알게 될 걸세.” 하고 넌지시 거절하였다. 이에 그 제자가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니 동우가 다시 “마땅히 삼여로써 책을 읽어야 하네(讀書三餘). 삼여(三餘)란 겨울과 밤, 그리고 비가 올 때라네.”며 일러주었다고 한다.

– 삼국지

배에 새기어 칼을 찾음. 시대의 변화(變化)를 모르고, 융통성(融通性)이 없어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음.

옛날 초나라 사람 중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좋은 칼을 하나 지니고 있었는데, 그만 칼을 물속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배에 작은 칼로 표시를 하고 말하길 “이곳이 내 칼이 떨어진 곳이다.” 하였다. 마침내 배가 멈추자 그는 새긴 곳을 보고는 물속으로 들어가 칼을 찾으려고 했다. 배는 이미 지나왔는데 칼은 그 자리에 있으니 이렇게 칼을 찾는다면 어리석지 아니한가? 옛날의 법으로써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대는 바뀌었으나 법은 바뀌지 않았으니 이런 방식으로 정치를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 여씨춘추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겨우 살아남.

중국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명신 굴원은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정치가였으나, 다른 이의 모함을 받아 신임을 잃고 멱라수에 돌덩이를 품에 안고 몸을 던져 죽었다. 그는 이러한 아픔을 담아 낸 이소(離騷)라는 명시를 남겼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雖九死 猶未其悔).’ 후에 중국의 명문장들을 모은 문헌인 문선에 이소를 수록하면서, 문선을 편집한 유량주는 이소의 저 구절에 주를 달기를 “아홉 번 죽어서 한 번을 살아남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직 후회하고 원한을 품기에는 족하지 못하다”라고 하였는데, 그 이후로 구사일생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되었다고 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남은 시간이 없음을 이르는 말.

춘추시대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에게 아버지와 형이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홀로 오나라로 망명하였다. 오자서는 9년 후 오나라 왕 합려를 도와 초나라로 들어가 수도를 함락시켰지만,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으며, 그 후계자 소왕의 행방 또한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기 위해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그러자 초나라의 충신 신포서는 오자서의 행동을 잔인하다고 하며, “그대는 본래 평왕의 신하로서 왕을 섬겼는데 지금 그 시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天理)에 어긋난 일이 또 있겠는가?”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오자서는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고 하였다고 한다.

– 사기.오자서전

천 가지 매운 일과 만 가지 괴로움. 마음과 힘을 다해 수고롭게 하면서 애씀을 비유한 말.

“전해 내려오는 경문에 이르기를, 부모가 자식을 낳아 돌보고 기르는 것이 천신만고이니, 추위도 애가 우는 소리도 결코 꺼리지 않는다(前來經文說 父母種種養育 千辛萬苦 不憚寒喧).”

– 돈황문헌

백번 활을 쏘아 백번 모두 맞히다. 목표로 삼은 것이 딱 들어맞았을 거나, 계획했던 일들이 예상대로 모두 순조롭게 성사됨을 비유.

춘추시대 초나라 공왕이 진나라 장수인 위기의 화살에 맞아 눈을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 화가 난 공왕은 신궁(神弓)으로 이름 난 양유기에게 화살 두 개를 주면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자, 양유기는 화살 한 대를 날려 위기를 죽이고 다른 한 대는 다시 돌려주었다고 한다. 초나라에는 또 명궁으로 이름 난 반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반당이 오십 보 떨어진 곳에 과녁을 설치해 놓고 화살을 날려 과녁 가운데를 정확히 맞히며 활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양유기는 반당에게, “오십 보 앞에서 화살을 날려 과녁을 맞히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적어도 백보는 먼 거리에서 쏘아 맞혀야 활솜씨가 제법이라고 할 수 있지.” 라며 비아냥거렸다. 이 말에 화가 난 반당은 백 보 떨어진 곳에 있는 버드나무 잎 세 개에 점을 표시해 놓고 양유기에게 맞혀보라고 하였다. 양유기는 활을 연속해서 세 번 쏘아 잎을 차례로 떨구었는데, 화살은 모두 버드나무 잎 한가운데를 꿰뚫었다고 한다.

한 번 들어 둘을 얻는다.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

전국시대 진나라 혜왕은 초나라의 사신 진진에게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 물었다. 진진은 옛 고사를 들어 말했다. “변장자라는 이가 있어 범을 찔러 죽이고자 하였는데 여관을 지키는 심부름꾼이 이를 만류(挽留)하면서 ‘두 범이 방금 막 소를 잡아먹으려 싸우고 있으니 싸우게 되면 곧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입니다. 그 때 다친 놈을 찔러 죽이면 일거에 두 범을 잡았다는 이름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변장자가 그 말을 듣고 그 말이 옳다고 생각되어 두 범이 싸우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에 두 범이 싸워서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으니, 변장자가 다친 놈을 찔러 죽이니 과연 두 마리 범을 잡은 공이 있었다고 합니다.”

– 전국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