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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월" 글 보관함

명규(命圭)를 잡으실 때에는 몸을 굽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셨으며, <명규(命圭)를 잡는 위치는> 위로는 읍(揖)할 때와 같게 하시고, 아래로는 물건을 줄 때와 같게 하셨으며, 낯빛을 변하여 두려워하는 빛을 띠시고, 발걸음을 좁게 떼시어 발꿈치를 끌듯이 하셨다. 연향(燕享)하는 자리에서는 온화한 낯빛을 하시고 사사로이 만나보실 때에는 화평하게 하셨다.(執圭하사대 鞠躬如也하사 如不勝하시며 上如揖하시고 下如授하시며 勃如戰色하시며 足蹜蹜如有循이러시다. 享禮에 有容色하시며 私覿에 愉愉如也러시다.)
– 논어.향당.5장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겨우 살아남.

중국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명신 굴원은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정치가였으나, 다른 이의 모함을 받아 신임을 잃고 멱라수에 돌덩이를 품에 안고 몸을 던져 죽었다. 그는 이러한 아픔을 담아 낸 이소(離騷)라는 명시를 남겼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雖九死 猶未其悔).’ 후에 중국의 명문장들을 모은 문헌인 문선에 이소를 수록하면서, 문선을 편집한 유량주는 이소의 저 구절에 주를 달기를 “아홉 번 죽어서 한 번을 살아남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직 후회하고 원한을 품기에는 족하지 못하다”라고 하였는데, 그 이후로 구사일생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