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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월 1일" 글 보관함

배에 새기어 칼을 찾음. 시대의 변화(變化)를 모르고, 융통성(融通性)이 없어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음.

옛날 초나라 사람 중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좋은 칼을 하나 지니고 있었는데, 그만 칼을 물속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배에 작은 칼로 표시를 하고 말하길 “이곳이 내 칼이 떨어진 곳이다.” 하였다. 마침내 배가 멈추자 그는 새긴 곳을 보고는 물속으로 들어가 칼을 찾으려고 했다. 배는 이미 지나왔는데 칼은 그 자리에 있으니 이렇게 칼을 찾는다면 어리석지 아니한가? 옛날의 법으로써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대는 바뀌었으나 법은 바뀌지 않았으니 이런 방식으로 정치를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 여씨춘추

명규(命圭)를 잡으실 때에는 몸을 굽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셨으며, <명규(命圭)를 잡는 위치는> 위로는 읍(揖)할 때와 같게 하시고, 아래로는 물건을 줄 때와 같게 하셨으며, 낯빛을 변하여 두려워하는 빛을 띠시고, 발걸음을 좁게 떼시어 발꿈치를 끌듯이 하셨다. 연향(燕享)하는 자리에서는 온화한 낯빛을 하시고 사사로이 만나보실 때에는 화평하게 하셨다.(執圭하사대 鞠躬如也하사 如不勝하시며 上如揖하시고 下如授하시며 勃如戰色하시며 足蹜蹜如有循이러시다. 享禮에 有容色하시며 私覿에 愉愉如也러시다.)
– 논어.향당.5장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겨우 살아남.

중국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명신 굴원은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정치가였으나, 다른 이의 모함을 받아 신임을 잃고 멱라수에 돌덩이를 품에 안고 몸을 던져 죽었다. 그는 이러한 아픔을 담아 낸 이소(離騷)라는 명시를 남겼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雖九死 猶未其悔).’ 후에 중국의 명문장들을 모은 문헌인 문선에 이소를 수록하면서, 문선을 편집한 유량주는 이소의 저 구절에 주를 달기를 “아홉 번 죽어서 한 번을 살아남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직 후회하고 원한을 품기에는 족하지 못하다”라고 하였는데, 그 이후로 구사일생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