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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제선왕에게 말하길,
“왕의 신하 중에 그 처와 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서 가서 놀던 자가 있었는데, 돌아올 때 쯤 그 처자를 살펴보니 얼고 굶주리게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와 다시는 만나지 않겠습니다.”
“옥을 다스리는 관리가 있어, 그 아래 관원들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파면하겠습니다.”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이 좌우를 돌아보고 다른 말을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6장

권력자(權力者)들은 비판(批判)하는 목소리를 싫어한다. 나아가 비판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社會) 혼란(混亂)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사회의 양극화(兩極化) 현상(現象)에 대하여 비판하면, 그 전에는 아무 문제(問題)가 없었는데, 그러한 비판이 나와 사회가 혼란해 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권력자들은 언론(言論)을 탄압(彈壓)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말대로라면, 비판하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方法)은 비판하는 자를 억압(抑壓)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최대한(最大限)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다.
암(癌)이란 병(病)은 의사(醫師)가 암이 있다고 선언(宣言)함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암이라는 진단(診斷)을 들을까 봐 무서워 병원(病院)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있던 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비판자들의 입을 막고 그들을 제거(除去)한다 해도 사회의 병은 없어지지 않는다.
권력자들은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적(批判的) 지식인(知識人)들로 인해 편견(偏見)과 독선(獨善)에 빠지는 위험(危險)을 피(避)할 수 있으며, 스스로를 훌륭하게 만들 기회(機會)를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