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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성어"의 글 태그

증자가 병이 위중하자,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였다.

“<이불을 걷고> 나의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전전(戰戰)하고 긍긍(兢兢)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하였으니, 이제서야 나는 <이 몸을 훼상시킬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구나, 소자(小子-제자)들아!(啓予足하며 啓予手하라 詩云 戰戰兢兢하여 如臨深淵하며 如履薄氷이라하니 而今而後에야 吾知免夫로라 小子아)”

– 논어.태백.3장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의 인물됨을 물었는데,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그(공자)의 사람됨이 어떤 일에 빠져들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워하며 근심을 잊어 늙어가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女奚不曰 其爲人也發憤忘食하고 樂以忘憂하여 不知老之將至云爾오)”

– 논어.술이.18장

고려 제26대 충선왕은 부왕 충렬왕의 후궁인 숙창원비를 취하고 그녀를 숙비로 봉하여 패륜을 저지르니, 이에 우탁1)은 죽음을 각오하고 백의(白衣) 차림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짊어진 채 대궐로 들어가 상소를 올렸다(지부상소持斧上疏).
충선왕의 곁에 있던 신하는 임금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상소문을 펴고도 감히 읽지를 못했다. 그러자 우탁은 호통을 치며 “경은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로서 임금의 패륜을 바로 잡지 못하고 악으로 인도하니, 경은 그 죄를 아느냐”고 통렬하게 꾸짖었다. 우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목숨을 걸고 충선왕의 잘못을 극간(極諫, 끝까지 간함)했다.

“군왕은 날마다 신하들과 더불어 정사를 토론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바로 잡기에도 겨를이 없을 터인데, 만고에 걸쳐 변할 수 없는 윤상(倫常)을 무너뜨림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사옵니까? 전하께서는 부왕이 총애하는 후궁을 숙비에 봉했는데, 이는 삼강오륜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종사에 전례가 없는 패륜이옵니다. (중략) 군왕이 나라의 흥망을 가늠하는 것은 오직 인(仁)과 불인(不仁)에 달려 있사옵니다. ‘신하는 간언을 할 때 목숨을 건다’고 했는데, 오늘 소신에게 터럭만큼의 잘못이 있다면 신의 목을 치시옵소서.”

충선왕은 개혁군주였고 무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윤상을 무너뜨린 자신의 패덕(悖德)한 행위를 극간한 우탁을 징치(懲治-징계하여 다스림)하지는 않았다.


1) 우탁(禹倬, 1263년 ~ 1342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역학에 뛰어났다.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지자(智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며, 지자는 동적(動的)이고 인자는 정적(靜的)이며, 지자는 낙천적(樂天的)이고 인자는 장수(長壽)한다.(知者는 樂水하고 仁者는 樂山이니 知者는 動하고 仁者는 靜하며 知者는 樂하고 仁者는 壽니라)”

– 논어.옹야.21장

고기를 잡으면 고기를 잡던 통발은 잊는다는 말로, 뜻을 이루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한 수단은 버리게 된다는 뜻.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고 만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는 도구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어버리고 만다. 이처럼 말이란 마음속에 가진 뜻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뜻을 얻으면 말은 잊어버리고 만다. 뜻을 얻고 말을 잊어버린 사람과 말하고 싶구나.

– 장자.외물편

위의 글에서 통발, 올가미, 말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을 말하며, 따라서 득어망전의 본 의미는 진리에 도달하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수단을 버릴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처럼 ‘배은망덕(背恩忘德)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말로 퍼담은 술도 마다 않는다.’는 뜻으로, 술을 매우 잘 먹음을 이르는 말.

홍문의 연회에서 항우의 모사인 범증은 유방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정작 항우는 죽일 뜻이 없었다. 이에 범증이 항장에게 칼춤으로 유방을 죽이라 지시하였고, 이 때문에 유방의 모사였던 장량은 주군이 위험한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어 장군 번쾌를 불렀다. 번쾌가 들어와 눈을 무섭게 치겨뜨고 유방을 비호하자, 항우가 그를 보고 좋은 장수라고 말하며 그에게 술 한 말과 고기를 주었다. 번쾌는 무장을 한 채로 술 한 말을 마시고는 방패를 도마 삼아 고기를 썰어 먹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