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滕)문공이 맹자에게 ‘등나라는 작은 나라로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데, 어느 나라를 섬겨야 합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그러한 계책은 제가 언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못을 깊이 파고 성을 높이 쌓아 백성과 더불어 지키되, 백성들이 목숨을 바치고 떠나가지 않는다면 한번 해볼 만한 일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3장
등(滕)문공이 맹자에게 ‘등나라는 작은 나라로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데, 어느 나라를 섬겨야 합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그러한 계책은 제가 언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못을 깊이 파고 성을 높이 쌓아 백성과 더불어 지키되, 백성들이 목숨을 바치고 떠나가지 않는다면 한번 해볼 만한 일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3장
추나라와 노나라가 싸웠다. 추나라 목공(穆公)이 맹자에게 ‘전쟁 중에 내 유사(有司-지휘관)중 33명이 죽었는데, 백성들 중에는 죽은 자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윗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고 구원하지 않았으니, 그들을 괘씸히 여겨 모두 죽이고자 하나 그 수가 너무 많아 모두 벨 수는 없고, 그렇다고 죄를 묻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흉년과 기근으로 백성들이 굶어 죽고 사방으로 도주한 자들이 몇 천 명이나 되는데도, 군주의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 차 있으며, 재물창고에는 재화가 충만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유사(有司)중에 왕께 보고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것은 윗사람들이 태만해서 아랫사람을 해친 것입니다. 증자께서 ‘경계하고 경계하라. 네게서 나온 것은 네게로 돌아간다.’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이제야 되갚음을 한 것이니, 군주께서는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만일 군주께서 인정(仁政)을 행하시면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친애하게 되어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2장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하여 취하자, 제후들이 연나라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제선왕이 맹자에게 ‘제후들이 과인을 정벌할 것을 도모하는 자가 많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탕왕(湯王)이 동쪽을 정벌하니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정벌하니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며, 「어찌하여 우리를 먼저 정벌해 주지 않는가?」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까닭은 탕왕께서 포악한 군주를 벌주고 백성들을 위문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나라가 그 백성에게 포악(暴惡)히 하니 왕께서 정벌하시었는데, 지금 그 부형(父兄)을 죽이고 자제(子弟)들을 구속하며 종묘(宗廟)를 부수고 중요한 기물들을 옮겨가는 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천하의 제후들이 군대를 움직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속히 연나라의 노약자들을 돌려보내시고 연나라의 귀중한 보배를 가져오기를 멈추시며, 연나라 백성들에게 물어 어진 정치를 할 군주(君主)를 세워준 뒤에 떠나오신다면, 제후들의 군대를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1장
제나라가 연나라를 쳐 승리하였다. 제선왕이 맹자에게 ‘어떤 사람은 과인에게 연나라를 취하라 하고, 어떤 사람은 반대합니다. 제나가 연나라를 50일만에 함락(陷落)한 것은 인력(人力)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하늘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연나라를 취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災殃)이 있을 것이니, 취함이 어떠합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취해서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하면 취하시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취하지 마십시오. 백성들이 왕의 군대를 환영함은 다만 물에 빠지고 불에 타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민심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또 다른 곳에서 구원을 바랄 뿐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0장
맹자가 말하길
“지금 여기에 아주 값 비싼 박옥(璞玉)이 있으면, 임금께서는 반드시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조탁(彫琢)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사욕을 따르고 어진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니, 어찌된 까닭입니까?”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9장
제선왕이 ‘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을 유치(留置)하고,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하였다는데,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弑害)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합니다.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부(一夫)라 이르니, 일부(一夫)인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군주를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8장
제선왕이 맹자에게 ‘내가 어떻게 사람됨을 알아 등용하거나 버릴 수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좌우의 신하가 모두 그를 어질다고 말하더라도 허락하지 말고, 여러 대부(大夫)들이 모두 어질다고 말하더라도 허락하지 말고, 국인(國人)이 모두 어질다고 말한 뒤에 살펴보아서 어짊을 발견하면 등용합니다.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그를 불가(不可)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며, 여러 대부들이 모두 불가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고, 국인(國人)이 모두 불가(不可)하다고 말한 뒤에 살펴보아 불가한 점이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7장
맹자가 제선왕에게 말하길,
“왕의 신하 중에 그 처와 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서 가서 놀던 자가 있었는데, 돌아올 때 쯤 그 처자를 살펴보니 얼고 굶주리게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와 다시는 만나지 않겠습니다.”
“옥을 다스리는 관리가 있어, 그 아래 관원들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파면하겠습니다.”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이 좌우를 돌아보고 다른 말을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6장
제선왕이 ‘왕정(王政)’에 대해 듣기를 청하니 맹자가 문왕의 정사(政事)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말하길,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환(鰥-홀아비)’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과(寡-과부)라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을 독(獨-무의탁자)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을 고(孤-고아)라 하니, 이 넷은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입니다. 문왕은 정사를 펴고 인을 베푸시되 반드시 이 네 사람들을 먼저 하셨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부자들은 괜찮지만, 이 곤궁한 이가 가엾다.(可矣富人, 哀此煢獨)’ 하였습니다.”
하니, 제선왕이 ‘과인에게는 재물과 색(色)을 좋아하는 병통이 있습니다.’하였다. 맹자가 다시 대답하길,
“그 또한 백성과 함께 더불어 하신다면 왕 노릇 하심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5장
제선왕이 맹자를 별궁인 설궁(雪宮)에서 만나 ‘현자도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옛날에 제나라 경공이 안자(晏子)에게 묻기를 ‘내가 전부산과 조무산을 구경하고 남쪽으로 낭야에 가고자 하는 어떻게 하면 선왕들의 유람과 비견될 수 있는가?’하고 물으니 안자가 ‘천자가 제후국에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하는데, 순행(巡行)한다는 뜻입니다. 제후가 천자국에 가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하는데, 자기가 맡은 바를 편다는 뜻입니다. 이 모두는 일이 아닌 것이 없어, 봄에는 나가서 경작하는 상태를 살펴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며, 가을에는 수확하는 상태를 살펴 부족한 것을 도와줍니다. 하나라 속담에 ‘우리 임금이 유람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쉬며, 우리 임금님이 즐기지 않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도움을 받으리오. 한 번 유람하고 한 번 즐김이 제후들의 법도가 된다.’ 하였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의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백성들의 근심을 근심한다면,(樂民之樂, 憂民之憂) 즐거워하기를 온 천하로써 하고 근심하기를 온 천하로써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고도 왕 노릇하지 못하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