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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문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 것과 같으니, 산을 쌓을 때에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쏟아 붓지 않아, 산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그만 두는 것도 내가 그만 두는 것이며. (학문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땅을 고르는 것과 같으니, 땅을 고를 때에 흙 한 삼태기를 쏟아 부어 시작하는 것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譬如爲山에 未成一簣하여 止도 吾止也며 譬如平地에 雖覆一簣나 進도 吾往也니라)”

– 논어.자한.18장

진(秦) 무왕(武王)은 나라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점차 자만심에 빠지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한 신하가 무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경에 ‘처음은 누구나 잘하지만 끝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은 적다(靡不有初 鮮克有終)’는 말이 있습니다. 선왕들은 시작과 끝을 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역사에는 처음에는 잘하다가도 끝마무리를 잘하지 못해 멸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대왕은 의양에서 승리하고 삼천 일대를 점령하면서 제후들로 하여금 감히 대항하지 못하게 하였고, 한(韓)과 초(楚) 두 나라의 군사들이 감히 진격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만일 대왕이 마무리만 잘하면 삼왕과 더불어 나란히 사왕으로 칭송되고, 오백(五伯-춘추 오패)이 육백(六伯)으로 되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멸망의 화를 입을 것입니다. 신(臣)은 제후(諸侯)들과 선비들이 장차 대왕을 오왕(吳王) 부차(夫差)나 지백(智伯) 요(瑤)처럼 여기게 될까 두렵습니다. 시경에서는 ‘1백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여긴다(行百里者 半於九十)’고 했습니다. 이는 마무리의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

– <전국책> 진책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보석 채굴꾼이 있었다. 그는 오 년 동안 강가에서 99만 9천9백99개의 돌을 깨뜨렸지만 결국 에메랄드를 구할 수 없었다. 그는 한계에 다다랐고 마침내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 하나의 돌멩이가 그의 발 앞에 굴러떨어졌다. 오 년 동안의 보람 없는 노동에 한껏 화가 나 있던 채굴꾼은 그 돌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그가 던진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세게 부딪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단 하나의 돌을 깨뜨리면 에메랄드를 캘 수 있었는데, 이제 막 성공하려는 그 순간에 채굴꾼은 포기를 선택했다. 돌멩이가 그의 발 앞에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면 에메랄드는 끝내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고사성어가 공휴일궤이다. 공휴일궤란 ‘아홉길 높이의 산을 쌓는 일이 한 삼태기 흙을 쌓아올리지 못해 실패하다.’는 뜻이다. 조금만 더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해서 헛된 일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구인공휴일궤(九仞功虧一簣)라고도 한다.
이 고사는 서경 여오편에서 보인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키고 새 왕조를 열자, 서쪽의 오랑캐 나라에서 축하의 뜻으로 진기한 개 한마리를 선물로 보냈다. 그 개는 키가 넉 자나 되는 큰 개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었고 사냥을 잘해 무왕이 몹시 기뻐하며 소중히 여겼다. 그러자 무왕의 동생 ‘석(奭)’이 무왕이 진기한 물건에 마음이 이끌려 정치를 소홀히 할까 염려하여 말했다.
“임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천하의 정치를 힘써 행해야 합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아홉 길 높이의 산을 만드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도 일을 다 이루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不矜細行하시면 終累大德하야 爲山九仞에 功虧一簣하리이다)”

공유일궤라는 고사성어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목적지에 이르는 것을 알고 포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최선을 다한 노력이 한발만 더 내딛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어줄지, 아니면 여전히 돌멩이를 내어줄지는 모를일이다.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동안의 들인 공이 아깝더라도 과감히 포기해야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말을 알지 못하니, 선택이 쉽지는 않다. 그럴때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그 자체, 그 과정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선택이란 늘 심사숙고해서 결정할 일이겠지만 한 삼태기의 흙을 쌓아올리지 못하고 중도포기하는 어리석음과 실수만은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겠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가서는 공경(公卿)을 섬기고, 들어와서는 부형(父兄)을 섬기며, 상사(喪事)를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술 때문에 곤란함을 당하지 않는 것,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出則事公卿하고 入則事父兄하며 喪事를 不敢不勉하며 不爲酒困이 何有於我哉오)”

– 논어.자한.1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