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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모음"의 글 태그

 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 길거리나 일반 민중들 사이에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을 말한다.  
  
‘소설은 패관으로부터 나왔으며 가담항설과 도청도설로 만들어졌다[小說者流 蓋出於稗官 街談巷說 道聽塗說之所造也].’ 소설은 민간의 풍속이나 정사를 살피려고 임금이 하급관리인 패관에게 가담항설을 모아 기록하게 함으로써 생겨났다. 세상 이야기나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말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뿌리를 뽑고 물의 근원을 막아버리다는 뜻으로 폐단의 근원을 뽑아 없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큰아버지에게 내가 있음은 마치 옷에 갓이 있고, 나무와 물에 근원이 있으며,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군주가 있는 것과 같다. 만일 큰아버지가 갓을 찢어버리고, 나무의 뿌리를 뽑으며, 물의 근원을 막는 것처럼 군주인 나를 저버린다면 오랑캐마저 나를 보고 비웃을 것이다.” – 춘추좌씨전

풀을 베고 그 뿌리를 뽑아 버리다. 걱정이나 재앙이 될 만한 일을 없애려면 그 근본부터 없애야 한다는 말로 무슨 일이든 일을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을 뜻하기도 한다.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惡을 보면 마치 농부가 힘써 잡초를 제거하듯이 雜草를 베어 내어 한 곳에 모아 쌓고 남은 뿌리를 잘라서 다시 繁殖할 수 없게 하면 善이 伸長될 것이다.’ – 춘추좌씨전.주임.

아교풀로 붙이고, 옻으로 칠을 한 것처럼 서로 떨어지지 않고 벗겨지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매우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귐을 말함.

당(唐)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과 그의 친구 원미지는 과거시험에 함께 급제하였다. 급제 후 그들은 백낙천이 중심이 되어 신악부(新樂府)를 완성하였는데, 그것은 한(漢)나라 민요를 바탕으로 시대의 폐단을 풍자하고 백성들의 분노와 고통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되어 백낙천과 원미지는 시골로 좌천되었다. 백낙천은 원미지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보냈다. “미지여! 미지여! 그대를 보지 못한 지 벌써 3년이 지났고, 그대의 편지를 받지 못한 지도 2년이 되네. 인생은 길지 않은데 어찌 우리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물며 교칠(膠漆)같른 마음으로 몸은 북쪽 오랑캐 땅에 두고 있으니 말일세.(況以膠漆之心 置於湖越之身) 나아가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물러나도 서로 잊을 수 없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떨어져있어 각각 백발이 되려하니 어쩌면 좋은가? 어쩌면 좋은가? 실로 하늘이 하는 일이라면 이를 어쩌면 좋겠는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다. 가을을 일컫는 말.

몽골고원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퍼져 유목생활을 하던 흉노는 근 2000년 동안 중국 왕조와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흉노는 해마다 가을철에 중국 북방 변경의 농경지대를 약탈하여 기나긴 겨울 동안의 양식을 마련했으므로, 북방 변경의 중국인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天高馬肥)’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의 침입이 있을지 몰라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당나라 초기 시인 두심언이 북방의 흉노를 막기 위해 출정하는 친구 소미도에게 써 준 시에 천고마비의 유래가 있다.

雲淨妖星落 구름은 깨끗한데 요사스런 별 떨어지고,
秋高塞馬肥 가을 하늘 드높으니 변방의 말은 살이 찌네.
據鞍雄劍動 말안장에 올라앉아 영웅검을 휘두르며,
搖筆羽書飛 붓을 휘둘러 승전보를 전하리.

물과 물고기의 사귐.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유비는 삼고초려 후 제갈공명을 얻고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나 관우와 장비는 자기들보다 공명을 더 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되었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즉 나와 제갈공명은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

風雲之會(풍운지회) : 구름이 용을 만나고 바람이 범을 만났다는 뜻으로 명군(明君)과 현상(賢相)이 서로 만나다.

– 삼국지

어릴 때 같이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벗이란 뜻. 어렸을 때의 벗이나 어렸을 때부터 오랜 친구를 의미함.

진(晉 : 東晉)나라 12대 황제인 간문제(簡文帝 : 371-372) 때의 일이다.

촉(蜀)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桓溫)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황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학식과 덕망이 높은 은호(殷浩)라는 이를 건무장군(建武將軍) 임명했다. 사실 은호는 환온과 어렸을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지만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政敵)이 되어 반목(反目)했다.
그 무렵 중원 땅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진나라에서는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하여 중원 땅을 정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군을 이끌고 간 은호는 대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上疏)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竹馬故友]’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모자란 사람. 사리 분별을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비유.

“주자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지혜가 없어서, 콩과 보리도 분간하지 못하였으므로 임금으로 세울 수 없었다.(周子有兄而無慧, 不能辨菽麥, 故不可立)”

– 춘추좌전

‘마음이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일 또는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이나 어떤 일을 추진할 때’를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는 장비의 부탁으로 그의 후원 복숭아밭(도원桃園)에서 다음과 같이 맹세하였다.

念劉備關羽張備 雖然異姓 旣結爲兄弟 則同心協力 求困扶危 上報國家 下安黎庶. 不求同年同月同日生 但願同年同月同日死. 皇天后土 實鑑此心 背義忘恩 天人共戮

생각건대 유비와 관우와 장비는 비록 성이 다르다 할지라도 이미 형제를 맺으려고 하니, 곧 마음을 한가지로 하고 힘을 합쳐, 곤란함을 구원하고 위태함을 도와,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만민을 편안하게 하리라.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남을 구하지 않더라도, 단지 원하는 것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으려 한다. 황천과 후토는 진실로 이 마음을 보시고, 의에 배반하고 은혜를 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일 것이다.

되돌려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다.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아 고침.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 맹자
위 맹자의 말에서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한다는 ‘반구저기’가 나왔는데, 하(夏)나라 백계(伯啓)의 고사에서 기원한 말이라고 한다.

중국 하나라 우(禹)임금 때, 제후 중 한명인 유호씨(有扈氏)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우임금은 아들 백계를 보내 유호씨의 공격을 막게 했는데, 백계는 유호씨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참패의 원인은 많았지만, 백계는 참패의 원인으로 다른 것을 말하지 않고 자기 탓으로 돌리며, “나는 유호씨에 비하여 영토도 작지 않고 백성들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는 나의 덕이 부족하고 지도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백계는 더욱 분발하여 검소하게 생활하며, 백성을 아끼고 덕이 있는 사람을 우대하며 재능 있는 사람을 널리 기용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나자 유호씨가 스스로 복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