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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한자어"의 글 태그

아무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을 건달이라고 한다.

건달(乾達)은 불교에서 음악을 맡아보는 인도 재래신(神)인 간다르바를 중국어로 표기한 건달바(乾闥婆)에서 유래한 말이다. 인도에서는 건달바가 음악을 전문(專門)으로 하는 악사나 배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같은 뜻으로 쓰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뜻으로 변했다. 종래(從來)에는 폭력을 휘두르며 남을 괴롭힌다는 뜻까지 갖게 되어 깡패라는 말과 비슷한 뜻으로도 쓰인다.

천하에 둘도 없는 건달이었던 감나무집 아들이 새 사람이 되었다며?
사업에 실패한 이후로 그 많던 재산 다 날리고, 겨우 하나 남은 집에 들어앉은 건달이 됐지 뭔가.

‘객’은 손님을 뜻하는 한자로 곧 제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쩍다’는 ‘수상쩍다’, ‘의심쩍다’ 할 때 쓰는 접미사(接尾辭)로 ‘~스럽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래서 ‘객쩍다’는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일 같다’는 의미로 ‘말이나 행동이 쓸데없고 싱겁다’라는 뜻으로 쓴다.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나 남의 말을 하게 되니 그 일은 자연히 쓸데없고 싱거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객쩍은 공상空想
객쩍은 수작酬酌
객쩍은 소리 그만두어요. 그 따위 실없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에요. 출처 <<염상섭, 삼대>>
이러한 자지레한 문제를 가지고 우리가 객쩍게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알면…. 출처 <<박태원, 낙조>>

글자 그대로 ‘머리카락 하나 만큼의 차이(差異)’라는 뜻으로 아주 작은 차이를 뜻한다. 일본말 ‘간하쓰(間髮)’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같은 의미를 가진 우리말 표현(表現)으로는 ‘종이 한 장 차이’, ‘터럭 하나 차이’ 등이 있다.

각(角)은 뿔, 축(逐)은 쫓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각축이란 서로 뿔을 맞대고 싸우는 것을 말한다. 실력이 비슷한 사람이나 팀끼리 양보 없이 대등하게 겨루는 모습을 비유한 말이다. 角逐之勢(각축지세) 또는 互角之勢(호각지세)라고도 한다.

각광(脚光)은 무대(舞臺) 전면 아래쪽에서 배우를 비춰주는 조명을 말한다. 영어로는 foot-light라고 한다. 각광을 받게 되는 배우는 다른 배우(俳優)와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돋보이게 되는데 보통 대상물을 강조하거나 긴장감이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조명 방법이다. 그래서 ‘각광받다’는 사회적으로 관심이나 주목(注目)의 대상이 되거나 사람들의 관심이나 흥미, 인기 등을 끌게 된다는 뜻이 있다.

‘감질나게 뜸 들이지 말고 속 시원하게 다 말해 보아라.’ 여기서 감질이란 무슨 뜻일까?
감질나다의 사전적 정의는 ‘바라는 정도에 아주 못 미쳐 애가 타다.’이다.
원래 감질(疳疾)은 주로 젖이나 음식을 잘 조절하지 못하여 어린 아이들이 많이 걸리는 병을 가리키는 한자어이다. 감질에 걸리면 얼굴이 누렇게 뜨고 여위며 목이 마르고 배가 아프면서 소화불량 증상(症狀) 등이 나타나는데 이 때 속이 헛헛하여 무언가 먹고 싶어진다. 그러나 먹고는 싶은데 소화가 잘 되지 않아 한꺼번에 먹지는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맛만 보게 된다. 그래서 ‘감질나다’에 ‘무엇이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한데 그 욕구를 충족(充足)시키지 못하여 애를 태우다’와 같은 비유적 의미가 생겨났다.

감질나게 조금씩 내오지 말고 한꺼번에 다 내오너라.
수돗물이 감질나게 나온다.

원래 감주(甘酒)라는 말은 술을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다가 술에 취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쉽게 취하지 않으면서도 술을 마시는 기분을 낼 수 있는 술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찹쌀과 누룩으로 빚은 감주(甘酒)였다. 원래 감주는 알코올이 약간 들어 있는 술로, 단시일 안에 속성(速成)으로 만들고 단맛이 있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료(飮料)였다. 다른 말로는 ‘단술’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흰밥에 엿기름 가루를 우려낸 물을 부어서 따뜻한 방에 덮어두고 삭인 전통(傳統) 음료를 가리킨다. 다른 말로는 ‘식혜’ 라고 한다.

‘가차없다’라는 말은 임시로 빌어다 쓰는 것도 안 될 정도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사정을 봐주거나, 용서(容恕)가 없다’라는 의미이다.
원래 가차(假借)란 한자를 만드는 원리인 육서(六書)의 하나로 어떤 말을 나타내는 적당한 글자가 없을 때, 뜻은 다르지만 음이 같은 글자를 빌어서 쓰는 방법이다. 그래서 ‘가차없다’라는 말은 ‘임시로 빌어 오는 것 마저도 안된다’는 의미로 ‘전혀 고려(考慮)의 대상이 되지 못함’을 뜻하게 되었다.

갈등의 갈(葛)은 ‘칡’을 등(藤)은 ‘등나무’를 뜻하는데, 이 두 한자가 만나면 ‘서로의 목표(目標)나 이해관계(利害關係)가 달라 서로 충돌(衝突)함. 또는 그런 상태(狀態)’라는 뜻이 됩니다. 그 이유는 칡과 등나무는 둘 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자라지 못하고 남의 몸을 감아 올라가며 자라는데, 칡은 왼쪽으로 감겨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겨 오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