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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읽기"의 글 태그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되었다. 공자께서

“너는 인물을 얻었느냐?(女得人焉爾乎아)”

라고 묻자, 자유는 대답하였다.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자가 있는데, 길을 다닐 적에 지름길을 따르지 않으며, 공적인 일이 아니면 일찍이 저의 집에 이른 적이 없습니다.(有澹臺滅明者하니 行不由徑하며 非公事어든 未嘗至於偃之室也니이다)”

– 논어.옹야.12장

염구가 말하였다.

“저는 부자(夫子)의 도(道)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힘이 부족합니다.(非不說子之道언마는 力不足也로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中道)에 그만두는 것이니,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것이다.(力不足者는 中道而廢하나니 今女畫이로다)”

– 논어.옹야.10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시골에 있는 것을 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賢哉라 回也여 一簞食와 一瓢飮으로 在陋巷을 人不堪其憂어늘 回也不改其樂하니 賢哉라 回也여)”

– 논어.옹야.9장

백우가 병을 앓자, 공자께서 문병하실 적에 남쪽 창문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운명인가보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亡之러니 命矣夫인저 斯人也而有斯疾也할새 斯人也而有斯疾也할새)”

– 논어.옹야.8장

계씨가 민자건을 비읍의 읍재로 삼으려 하자, 민자건이 <사자(使者)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잘 말하여다오. 만일 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노(魯)나라를 떠나 제(齊)나라의> 문(汶)수가에 있겠다.(善爲我辭焉하라 如有復我者면 則吾必在汶上矣로리라)”

하셨다. – 논어.옹야.7장

계강자가 물었다. “중유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由)는 과단성이 있으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由也果하니 於從政乎에 何有리오)”

“사(賜-자공)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하고 물으니,

“사(賜)는 사리에 통달했으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賜也可使從政也與잇가)”

하셨다. “염구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하고 물으니,

“구(求)는 다재다능하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求也藝하니 於從政乎에 何有리오)”

하셨다. – 논어.옹야.6장

공자께서 중궁을 논평하여 말씀하셨다.

“얼룩소 새끼가 색깔이 붉고 또 뿔이 제대로 났다면 비록 쓰지 않고자 하나 산천(山川)의 신(神)이야 어찌 그것을 버리겠는가?(犁牛之子騂且角이면 雖欲勿用이나 山川其舍諸아)”

– 논어.옹야.4장

자화가 <공자를 위하여> 제나라에 심부름을 가자, 염자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줄 것을 요청하니, 공자께서

“부(釜)를 주어라.(與之釜하라)”

하셨다. 더 줄 것을 요청하자, 공자께서

“유(庾)를 주어라.(與之庾하라)”

하셨는데, 이보다 많은 5병(秉)을 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적(赤-자화)이 제나라에 갈 때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궁박(窮迫)한 자를 돌봐주고 부유(富裕)한 자를 계속 대주지 않는다.’하였다.(赤之適齊也에 乘肥馬하며 衣輕裘하니 吾聞之也하니 君子는 周急이요 不繼富라호라)”

원사가 <공자의> 가신(宰)이 되었는데, <공자께서> 곡식 9백을 주자, 사양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사양하지 말고 너의 이웃집과 마을 및 향당에 주려무나!(毋하여 以與爾隣里鄕黨乎인저)”

– 논어.옹야.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