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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증자는 자양에게 말하길,

“그대는 용기를 좋아하는가? 내가 일찍이 선생님(공자)으로부터 큰 용기에 대해 들었다. 스스로 돌이켜보아 옳지 않으면 비록 하찮은 사람이라도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스스로 돌이켜보아 옳다면 비록 천만명이라도 두렵지 않다.(子好勇乎? 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 맹자.공손추장구상.2장

어떤 전통(傳統)에서는 제자들이 일 년에 하루 또는 필요한 경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整理)한다. 물건들을 일일이 손으로 만지면서 “나에게 이 물건이 정말로 필요할까?”라고 큰 소리로 묻는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들고 “언젠가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을까?”라고 묻는다. 간직해둔 기념품(紀念品)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이 물건에 얽힌 기억이 내게 여전히 중요한가?”라고 묻는다. 옷장을 열고, “내가 이 옷을 입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지? 이 옷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가?”라고 묻는다. (중략)
오래된 물건들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새로움이 차지할 공간(空間)이 없어진다.

– 마크툽.글 파울로 코엘료.그림 황중환.역자 최정수.자음과모음.2016.02.29

쉽게 읽히는 책. 공감되는 이야기도 물론 적진 않았지만 종교인이 읽는다면 더 좋을 것 같은 책.

다음은 옮긴이의 말 중 일부.
세상을 살다보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자문(自問)하는 순간이 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선택의 기준이 서지 않아 고민(苦悶)하기도 하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건 앞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이면 종교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신(神)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바로 그런 순간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경험이며, 인류가 축적(蓄積)해온 빛나는 영적 유산(遺産)이기도 합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하지만 다시금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야기, 웃음을 머금게 하는 유머러스한 이야기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크툽.글 파울로 코엘료.그림 황중환.역자 최정수.자음과모음.2016.02.29

공손추가 맹자에게 ‘선생님께서 제나라에 등용된다면 관중이나 안자의 공적을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맹자가 ‘관중이나 안자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공손추가 다시 ‘관중은 그 임금을 패자로 만들었고, 안자는 그 임금을 세상에 드러냈는데, 이들이 부족해서 입니까?’하니, 맹자가 ‘제나라를 가지고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손을 뒤집는 것과 같다.’하였다. 공손추가 다시 묻기를 ‘덕이 뛰어난 문왕은 100년을 살았으나, 천하에 두루 미치지 못함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문왕 역시 본받기에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하니, 맹자가 대답하길,

“주왕이 비록 폭정을 하였으나, 천하가 은나라에 귀의한지 오래되었고 또한 현명한 신하들이 있어 은나라를 도왔고 문왕은 사방 백리의 토지에서 일어났으니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제나라 속담에 ‘비록 지혜가 있다 한들 시세를 타는 것만 못하며, 비록 호미가 있다 한들 농사지을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하였는데 바로 지금의 시세라면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손을 뒤집는 일처럼 쉬운 것이다. 제나라는 이미 넓은 땅과 많은 백성을 갖고 있으며, 백성들은 학정에 시달려 초췌해진 것이 이때보다 심한 적이 없다. 굶주린 자는 밥을 먹이기 쉽고 목마른 자는 물을 먹이기 쉽다. 공자께서는 ‘덕이 퍼져나가는 것이 역마로 명을 전하는 것보다 빠르다’하였으니, 지금 어진 정치를 베푼다면 옛 사람의 반밖에 노력하지 않아도 그 공적은 두 배가 될 것이다.”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상.1장

노평공이 맹자를 만나려 하자 장창이라는 신하가 만류했다. 악정자가 이 일을 맹자에게 말하니 맹자가 말하길,

“일이 이루어짐은 무언가가 그렇게 되게 만드는 것이며, 이루어지지 않음 역시 무언가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이루어짐과 이루어지지 않음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노나라 임금을 만나지 못한 것은 장창 때문이 아니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6장

등문공이 맹자에게 ‘등나라는 작은 나라이니 힘을 다해 큰 나라를 섬겨도 화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옛날에 태왕이 ‘빈’나라에 살고 있을 때 적인(狄人)이 쳐들어왔습니다. 태왕은 가죽, 비단, 가축, 재물 등을 바쳐 섬기려 하였으나 결국에 화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노인들을 불러 말하기를 ‘적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나의 땅입니다. 내가 듣기로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것 때문에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제가 이 나라를 떠나겠습니다.’하였습니다. 그리고 ‘빈’을 떠나 기산아래에서 사니, ‘빈’나라 사람들은 어진 이를 잃을 수는 없다하며 태왕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대대로 지켜온 땅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죽는 한이 있어도 떠날 수 없다’하였으니, 청컨대 임금께서는 이 둘 중 하나를 택하십시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하.15장

小勇者 血氣之怒也 大勇者 理義之怒也 血氣之怒 不可有 理義之怒 不可無.
작은 용기는 혈기에서 나오는 노여움이고, 큰 용기는 의리(義理)에서 나오는 노여움이다. 혈기에서 나오는 노여움은 있어서는 안되고, 의리에서 나오는 노여움은 없어서는 안된다.

– 장경부.양혜왕장구하3장

정치의 근본은 백성이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근본이다. 맹자는 백성은 일정한 생업(恒産)이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도 없다고 보았다.(無恒産無恒心). 또한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백성은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한 일 등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되는데, 그 때 백성들이 죄를 지었다 하여 형벌을 주는 것은 백성을 그물질 하는 것(罔民)과 다름없다 하였다. – 맹자.양혜왕장구상.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