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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읽기"의 글 태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富)와 귀(貴)는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나 그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으면 처하지 않아야 하며, 빈(貧)과 천(賤)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그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았다 하더라도 버리지 않아야 한다.군자(君子)가 인(仁)을 떠나면 어찌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군자(君子)는 밥을 먹는 동안이라도 인(仁)을 떠남이 없으니, 경황 중에도 이 인(仁)에 반드시 하며, 위급한 상황에도 이 인(仁)에 반드시 하는 것이다.(富與貴是人之所欲也나 不以其道得之어든 不處也하며 貧與賤是人之所惡也나 不以其道得之라도 不去也니라 君子去仁이면 惡乎成名이리오 君子無終食之間違仁이니 造次에 必於是하며 顚沛에 必於是니라)”

– 논어.이인.5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하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궁한 데 처할 수 없으며 장구하게 즐거움에 처할 수 없으니, 인자(仁者)는 인(仁)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智者)는 인(仁)을 이롭게 여긴다.(不仁者는 不可以久處約이며 不可以長處樂이니 仁者는 安仁하고 知者는 利仁이니라)”

– 논어.이인.2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의 <인심이> 인후(仁厚)한 것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인(仁)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혜롭다 하겠는가.(里仁이 爲美하니 擇不處仁이면 焉得知리오)”

– 논어.이인.1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으며, 예(禮)를 행함에 공경하지 않으며, 초상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관찰하겠는가?(居上不寬하며 爲禮不敬하며 臨喪不哀면 吾何以觀之哉리오)”

– 논어.팔일.26장

공자께서 소악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좋다.(盡美矣요 又盡善也라)”

하셨으며, 무악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못하다.(盡美矣요 未盡善也라)”

하셨다.
– 논어.팔일.25장

의땅의 봉인이 뵙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이곳에 이르면 내 일찍이 만나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君子之至於斯也에 吾未嘗不得見也로라)”

하였다. 종자(從者)가 뵙게 해주자, <그가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공자께서> 벼슬을 잃음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천하에 도(道)가 없는 지 오래되었다. 하늘이 장차 부자(夫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二三子는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久矣라 天將以夫子爲木鐸이시리라)”

– 논어.팔일.24장

공자께서 노나라 태사에게 음악을 말씀하셨다.

“음악은 알 만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적엔 <오음(五音)을> 합하여, 풀어놓을 때에는 조화를 이루고 분명하며, 연속되어서 한 장을 끝마쳐야 한다.(樂은 其可知也니 始作에 翕如也하여 從之에 純如也하며 퉰如也하며 繹如也하여 以成이니라)”

– 논어.팔일.23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管仲)의 기국(器局)이 작구나!(管仲之器小哉라)”

혹자가

“관중(管仲)은 검소했습니까?(管仲은 儉乎잇가)”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씨(管氏)는 삼귀(三歸)를 두었으며, 가신(家臣)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管氏有三歸하며 官事를 不攝하니 焉得儉이리오)”

“그러면 관중(管仲)은 예(禮)를 알았습니까?(然則管仲은 知禮乎잇가)”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라의 임금이어야 병풍으로 문을 가릴 수 있는데 관씨(管氏)도 병풍으로 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임금이어야 두 임금이 우호(友好)로 만날 때에 술잔을 되돌려 놓는 자리를 둘 수 있는데 관씨(管氏)도 술잔을 되돌려 놓은 자리를 두었으니, 관씨(管氏)가 예(禮)를 안다면 누가 예(禮)를 알지 못하겠는가.(邦君이야 樹塞門이어늘 管氏亦樹塞門하며 邦君이야 爲兩君之好에 有反坫이어늘 管氏亦有反坫하니 管氏而知禮면 孰不知禮리오)”

– 논어.팔일.2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