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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일"의 글 태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으며, 예(禮)를 행함에 공경하지 않으며, 초상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관찰하겠는가?(居上不寬하며 爲禮不敬하며 臨喪不哀면 吾何以觀之哉리오)”

– 논어.팔일.26장

공자께서 소악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좋다.(盡美矣요 又盡善也라)”

하셨으며, 무악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못하다.(盡美矣요 未盡善也라)”

하셨다.
– 논어.팔일.25장

의땅의 봉인이 뵙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이곳에 이르면 내 일찍이 만나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君子之至於斯也에 吾未嘗不得見也로라)”

하였다. 종자(從者)가 뵙게 해주자, <그가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공자께서> 벼슬을 잃음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천하에 도(道)가 없는 지 오래되었다. 하늘이 장차 부자(夫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二三子는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久矣라 天將以夫子爲木鐸이시리라)”

– 논어.팔일.24장

공자께서 노나라 태사에게 음악을 말씀하셨다.

“음악은 알 만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적엔 <오음(五音)을> 합하여, 풀어놓을 때에는 조화를 이루고 분명하며, 연속되어서 한 장을 끝마쳐야 한다.(樂은 其可知也니 始作에 翕如也하여 從之에 純如也하며 퉰如也하며 繹如也하여 以成이니라)”

– 논어.팔일.23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管仲)의 기국(器局)이 작구나!(管仲之器小哉라)”

혹자가

“관중(管仲)은 검소했습니까?(管仲은 儉乎잇가)”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씨(管氏)는 삼귀(三歸)를 두었으며, 가신(家臣)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管氏有三歸하며 官事를 不攝하니 焉得儉이리오)”

“그러면 관중(管仲)은 예(禮)를 알았습니까?(然則管仲은 知禮乎잇가)”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라의 임금이어야 병풍으로 문을 가릴 수 있는데 관씨(管氏)도 병풍으로 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임금이어야 두 임금이 우호(友好)로 만날 때에 술잔을 되돌려 놓는 자리를 둘 수 있는데 관씨(管氏)도 술잔을 되돌려 놓은 자리를 두었으니, 관씨(管氏)가 예(禮)를 안다면 누가 예(禮)를 알지 못하겠는가.(邦君이야 樹塞門이어늘 管氏亦樹塞門하며 邦君이야 爲兩君之好에 有反坫이어늘 管氏亦有反坫하니 管氏而知禮면 孰不知禮리오)”

– 논어.팔일.22장

애공이 재아에게 사(社)에 대하여 물으니, 재아가 대답하기를

“하후씨(夏后氏)는 소나무를 <심어 사주(社主)로> 사용하였고, 은(殷)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사용하였고, 주(周)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사용하였으니, <밤나무를 사용한 이유는>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戰栗)을 느끼게 하려고 해서였습니다.(夏后氏는 以松이요 殷人은 以柏이요 周人은 以栗이니 曰 使民戰栗이니이다)”

하였다. 공자께서 이를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내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이라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탓하지 않는다.(成事라 不說하며 遂事라 不諫하며 旣往이라 不咎로라)”

– 논어.팔일.21장

정공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며,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어찌 해야 합니까?(君使臣하며 臣事君하되 如之何잇고)”

하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신하를 부리기를 예(禮)로써 하고, 신하는 임금을 섬기기를 충성으로써 해야 합니다.(君使臣以禮하며 臣事君以忠이니이다)”

– 논어.팔일.19장

자공이 초하룻날 <사당(祠堂)에> 고유(告由)하면서 바치는 희생 양(羊)을 없애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야! 너는 그 양(羊)을 아까워하느냐? 나는 그 예(禮)를 아까워한다.(賜也아 爾愛其羊가 我愛其禮하노라)”

– 논어.팔일.1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