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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글 태그

다레이오스 왕이 페르시아를 통치(統治)하던 시절(時節) 측근(側近)의 그리스인들을 불러 돈을 얼마나 주면 죽은 부모(父母)의 시신(屍身)을 먹을 수 있겠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레이오스 왕은 이번에는 부모 고기를 먹는 풍습(風習)을 가진 칼라이타이라고 불리는 인도인들을 불러, 앞서의 그리스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통역(通譯)을 하도록 한 다음, 어느 정도(程度)의 돈을 주면 죽은 부모를 화장(火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 인도인들은 큰 소리로 왕에게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달라는 간청(懇請)을 했다.

– 역사.헤로도토스

옛날에 훌륭한 학자를 아들로 둔 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일찍 남편을 여의어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던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여 살림살이를 해가면서 두 아들을 공부시켰다. 하루는 어머니가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처마 물이 떨어졌다. 그런데 물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땅 밑에서 쇠그릇이 울리는 소리와 같았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땅을 파 보니 과연 큰 가마가 있었다. 그 안에는 하얀 은이 가득 들어 있었다. 가난한 살림에 이같이 큰 보화를 얻었으니 오죽 좋으랴. 그러나 어머니는 남모르게 이것을 흙으로 묻고 그 이튿날 오라버니에게 부탁하여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그 후 두 아들은 장성하고, 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집안 살림도 나아져 이제는 끼니 걱정 옷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오라버니에게 말했다.
“남편이 죽은 후 나는 이 두 아이들을 맡아 잘 기르지 못할까 밤낮으로 마음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학문도 깊어졌고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니 이제 나는 세상을 떠나도 부끄럽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면서 은이 든 가마를 버린 이야기를 덧붙여 하였다. 이 말에 그 오라버니는 깜짝 놀랐다. 그 어려운 살림에 굴러 들어온 보화를 버리다니……. 어머니는 다시 말했다.
“이유 없이 큰돈을 얻으면 반드시 의외의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고생을 하여 그 대가를 얻어야 합니다. 힘들여 일하지 않고 재물을 얻는다면 재물의 소중함도 모르고 게을러질 것입니다. 돈을 낭비하는 습관만 생기고, 마음이 점점 게을러져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이므로 이를 떠나는 것이 화를 떠나는 일이라고 여겨 가난의 길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식물학자가 섬으로 식물 채집을 떠나게 되었다. 섬은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식물학자는 조그만 배를 타고 건너기로 하였다.
“여보게 사공, 나를 저 섬까지 태워다 주게.”
식물학자는 마침 뱃사공을 만나 그렇게 부탁했다.
“예, 타시지요.”
착한 사공은 식물학자를 배에 태우고 섬을 향해 노를 저었다. 그런데 그 식물학자는 무척 거만했다. 자기보다 지식이 적은 사람은 무조건 깔보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보게 사공, 자네는 몇 나라의 말을 할 줄 아는가?”
“저는 우리 나라 말밖에는 할 줄 모릅니다.”
“참 한심하군. 나는 무려 10개 국어를 할 줄 아는데.”
그렇게 말한 뒤 식물학자는 또 이렇게 물었다.
“여보게 사공, 자네는 책을 얼마나 읽었나?”
“그저 몇 권 정도밖에는 읽지 못했습니다.”
“겨우 몇 권이라고? 그럼 여태 뭐하며 살았나? 정말 한심한 일이군. 나는 수만 권의 책을 읽어 모르는 게 없는데.”
그럴 즈음 작은 배는 깊은 바다 한가운데 와 있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며 폭풍이 몰아쳤다.
“어, 어…….”
식물학자는 깜짝 놀라 뱃전을 붙잡고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순간 배가 훌러덩 뒤집어졌다. 식물학자와 사공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식물학자는 수영을 할 줄 몰라 자꾸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사공은 유유히 헤엄쳐 해변으로 빠져 나왔다. 사공은 뒤를 돌아보며 식물학자에게 말했다.
“학자님은 모르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제일 중요한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모르시는 군요.”

호기심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는 스승한테 날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스승님, 제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됩니까?”
스승은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자의 질문이 거듭되자 스승은 돌 한 개를 내밀었다.
“이 돌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흥정을 해봐라. 하지만 팔지는 마라. 값을 쳐주는 사람만 나타나면 된다.”
제자는 자그마한 돌을 가지고 시장에 갔다.
‘이런 쓸모없는 돌을 돈 주고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람이 두 냥을 주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닷 냥을 내겠다고 했다. 제자는 몹시 기뻐하며 돌아가 스승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이 쓸모없는 돌을 글쎄 닷 냥이나 주고 사겠대요. 정말로 팔아야 될까 봐요.”
그러자 스승은 나지막이 말했다.
“귀금속 시장에 가지고 가서 흥정해 보거라. 하지만 이번에도 팔지는 마라. 절대 팔아서는 안 된다.”
제자는 다음 날 귀금속 시장에 갔다. 어떤 사람이 돌 값으로 쉰 냥을 제시했다. 두 번째 사람은 2백 냥을 내밀었다. 경쟁이 붙었다. 1만냥을 주겠다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흥분한 제자는 스승한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은 이 일을 모두 말했다. 이번에도 스승은 담담하게 말했다.
“최고급 보석상에 가서 값을 매겨 보거라. 이번에도 절대로 팔아서는 안 된다. 내 말을 명심해라.”
보석상은 돌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3만 냥에 사겠다고 했다. 제자는 거절했다. 가격은 5만 냥까지 올라갔지만 역시 거절했다. 보석상이 화가 나서 제자에게 원하는 가격을 말해보라고 했다. 물론, 제자는 스승의 명령을 어기고 돌을 팔수는 없는 처지였다. 그는 돌을 가지고 돌아가 스승에게 말했다.
“이 돌덩이가 글쎄 5만 냥까지 올랐습니다. 팔아도 좋을 것 같은데요. 스승님.”
스승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그 일을 시킨 이유를 알겠느냐? 보석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자신에게 매기는 값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는 남들의 평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무한하므로 자신의 숭고한 가치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연마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값을 매길 수 없는 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기르면서 자신의 가치를 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매력적입니다. 자신감은 일종의 ‘흡인력’입니다. 자신감을 끌어내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 없다고 여겼던 일을 큰 용기를 갖고 해보는 것입니다.

탄줘잉 지음. 김명은 옮김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춘추시대, 오나라왕 부차는 월왕 구천에게 패한 아버지 합려의 복수를 다짐하며,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신하들에게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 아버지의 유명을 외치게 하였다고 하지요. 이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와신상담(臥薪嘗膽)’인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와신상담 고사 링크
https://haesol-memo.com/臥薪嘗膽-와신상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는 페르시아제국의 전성기 때의 왕입니다. 페르시아는 기원전 550년경 키루스 대왕이 이오니아를 정복하면서 이오니아의 도시국가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각 나라에 참주를 보냈는데, 기원전 499년 이오니아 도시 국가의 참주였던 아리스타고라스 다른 이오니아 도시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때 좀 더 강력한 동맹군이 필요했던 아리스타고라스는 그리스의 아테네를 끌어들여 아테네도 전쟁에 가담하게 됩니다. 아리스타고라스는 아테네 군대의 도움으로 페르시아의 지역 도읍인 사르디스를 점령하여 불태워버렸습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반란을 일으킨 이오니아보다 아테네를 향한 복수심에 하인에게 끼니마다 “전하, 아테네인을 잊지 마소서”라고 세 번 말하게 하며 복수를 다짐하였다고 합니다.

크로이소스는 기원전 561년부터 리디아의 마지막 왕으로 엄청난 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이오니아의 그리스 도시 국가를 차례로 정복하고 리디아에 합병(合倂)했습니다. 이렇게 리디아가 강대(强大)해 지자 그리스의 현인(賢人)들이 크로이소스를 방문(訪問)했는데, 그 중 솔론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크로이소스는 보석과 금으로 치장하고 자신의 막대한 부를 보여주며 솔론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론이 이런 모습에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자, 크로이소스는 솔론에게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행복(幸福)하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솔론은 아테네 시민인 ‘텔루스’란 남자라고 대답했습니다. 텔루스는 번영(繁榮)한 나라에 태어나 훌륭한 자식을 두었고 스스로 정직한 사람임을 증명하였으며, 조국(祖國)을 위하여 싸우다가 전사(戰死)한 그의 죽음도 명예(名譽)로웠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그 다음에는 누가 행복한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다시 아테네 시민인 ‘클레오비스’와 ‘비토’ 형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형제애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깊었으며 아주 용감한 형제였습니다. 크로이소스는 화가 나서
“뭐라고! 그대는 내가 누리는 행복이 서민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는가?”
그러자 솔론은
“왕께서는 값비싼 보물과 최고의 권력(勸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끝까지 권세와 부를 누릴 수 있는지는 아무도 장담을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여전히 변화(變化)할 수 있는 여지(餘地)가 있는 동안에 인간의 행복을 평가하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변화할 여지가 있는 어느 누구를 행복하다하는 것은 여전히 상을 두고 경쟁하는 동안에 선수에게 승리를 선언(宣言)하고 시상(施賞)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판결은 불안정하고 승인(承認)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크로이소스는 솔론을 경멸(輕蔑)했지만 후에 퀴로스(Cyrus)에게 전투에서 패해 화형(火刑)을 선고받아 장작에 묶여있을 때, 그는 솔론의 이름을 세 번 외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크로이소스는 권력을 쥐고 있는 자신을 그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하고, 권력의 영원성을 믿었지만 자신의 운명이 그렇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왕도(王道)가 없다’에서 왕도의 의미는 ‘어떤 어려운 일을 해 나가기 위한 쉬운 방법이나 지름길’을 의미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그리스의 학자(學者)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에게 기하학(幾何學)을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方法)이 없냐고 묻자 유클리드가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대답(對答)했다는 서양(西洋) 고사(故事)에서 유래(由來)한 것이다. 여기서 유클리드가 언급(言及)한 왕도(Royal Road)는 아케메네스 왕조(王朝) 페르시아 제국(帝國)이 만든 도로(道路)를 가리키는 것이다. 페르시아는 제국(帝國)의 서쪽 끝에 있는 사르디스에서 수도(首都)인 수사에 이르는 일종(一種)의 고속도로(高速道路)를 만들었고, 요소(要素)마다 역참(驛站)과 수비대(守備隊)를 갖추어 당시(當時) 도보(徒步) 여행(旅行)으로 90일 걸리던 거리를 파발마(擺撥馬)로 7일만에 주파(走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클리드는 학문(學問)을 하는 데에는 이처럼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출처 : 나무 위키.https://namu.wiki/w/왕도

중국 송나라 때 범문공이라는 사람이 유명한 관상가(觀相家)를 찾아갔다. 이 관상가는 사람들이 집 대문에 들어서면 샛문을 통해 미리 관상을 보고, 재상이 될 얼굴이면 마당까지 나가서 정중히 맞아들이고, 원님쯤 될 얼굴이면 방문 앞쯤 나가서 맞고 진사 벼슬쯤 할 얼굴이면 문을 열어 주며 들어오라 하고, 그렇지도 못 할 사람 같으면 문도 열어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범문공이 찾아가자 문도 열어보지도 않은 채 들어오라고 하였다. 범문공은 조금 실망하였지만, 관상가에게 자신이 훗날 재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역시나 될 수 없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범문공은 낙담하였다가 며칠 후 다시 관상가를 찾아가 이전에 재상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의원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옛날에는 의원은 아주 낮은 신분의 직업이어서 관상가는 의원이 되려는 이유를 물었다. 범문공은 “나는 가난하고 고통을 겪는 백성들을 돕고자 재상이 되고 싶었는데, 그것이 안된다고 하니,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도 돕고 싶어 의원이 되고자 합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관상가는 당신은 앞으로 큰 재상이 되겠다고 했다. 관상가가 갑자기 말을 바꾸니 범문공은 의아해 하였다. 관상가는 “관상이란 얼굴상이 제일 먼저고, 다음은 뼈의 상이며 그 다음은 마음의 상인데, ‘色相不如骨相, 骨相不如心相(색상불여골상, 골상불여심상)’이라 하여 예부터 얼굴상은 골상만 못하고 골상은 마음상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얼굴상이나 뼈상은 별로 시원치 않아 재상감이 아니지만, 마음 쓰는 것을 보니 재상이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범문공은 관상가의 말처럼 송나라 때, 재상을 20년간이나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뒤 내각 구성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선택 할 때, 비서관이 한 사람을 추천하였다. 링컨은 그 사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황당해진 비서관이 “그 사람이 자기 얼굴까지 책임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얼굴이야 부모님 이 만들어준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요?”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네. 뱃속에서 나올 때에는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얼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사람의 얼굴은 온통 불만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고 엷은 미소 한 번 짓는 걸 본 적이 없다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마음을 맞춰 함께 일하기는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얼굴에서 그 사람이 겪어 온 일을 읽을 수 있다. 얼굴이 바로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길이자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관상학(觀相學)의 대가였던 마의선인(麻衣仙人)이 어느 날 나무를 하러 가는 머슴을 보았는데, 그 관상을 보니 일찍 죽을 운명이었다. 그래서 머슴에게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으니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머슴은 계곡 가에 앉아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있었다. 그 때 계곡물에 수많은 개미떼가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나뭇가지에 하나에 의지해 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겨 그는 나뭇가지를 물에서 건져 개미떼들을 모두 살려 주었다. 세월이 지나 마의선인은 다시 그 마을을 지나며 머슴을 보게 되었는데, 그의 관상이 크게 변해 있었다고 한다. 마의선인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가 쓴 ‘마의상서<麻衣相書>‘의 맨 마지막을 다음의 구절로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相好不如身好 관상이 좋은 것은 건강이 좋은 것만 못하고
身好不如心好 건강이 좋은 것은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고
心好不如德好 마음이 좋은 것은 덕이 좋은 것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