讐怨莫結, 路逢狹處難回避.
원수와 원망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 – 명심보감.계선편
"2018, 5월" 글 보관함
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상록수로 사시사철 항상 푸르면서도 서로 비슷하게 생겨 흔히 가까운 벗으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송무백열이라고 하면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 되어 기뻐할 때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송무백열과 비슷한 뜻의 사자성어로는 혜분난비(蕙焚蘭悲)가 있는데, ‘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벗의 불행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一日不念善, 諸惡自皆起.
하루라도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저절로 생겨난다.
국정농단을 한자로 쓰면 國政壟斷이 된다. 농단의 농을 어감상 ‘弄(희롱할 롱)’이 아닐까 했는데, 壟(언덕 롱)이다. 농단(壟斷)은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오른 언덕’이라는 뜻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로 맹자 공손추장구에 보인다.
전국시대 제나라 선왕 때, 맹자는 제나라에서 수년간 머물렀으나 왕도정치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귀국을 결심했다. 선왕은 맹자에게 높은 봉록을 줄터이니 제나라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제의 했으나 맹자는 농단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맹자는 이어 농단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한 욕심많은 교활한 사나이가 시장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높은 언덕(농단壟斷)에 올라가 시장을 내려다 보고는 이익이 날 만한 것들은 모두 독차지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이 사나이를 비난하였고, 관리는 그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농단’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차지함’이라는 속뜻이 생기게 되었다. 국정농단이란 좋은 자리에서 이익을 독점하듯 나라의 정사를 마음대로 쥐락펴락 한다는 뜻이다.
병법 36계의 서른네번째 계책으로, 제 몸을 괴롭히는 계책이다. 일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면서 까지 어쩔 수 없이 하는 수단을 말하며 고육지계(苦肉之計)라고도 한다.
1. 하이힐은 17~18세기에 유럽의 귀부인들이 비가 올 때 드레스를 더럽히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한다.
2.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물량이 쌓이자 건설업체들은 이자 부담을 감수하고 잔금을 유예해 주는 등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이 표현과 혼동해서 사용되는 성어로 궁여지책(窮餘之策)이 있다. 궁여지책은 ‘궁한 나머지 짜낸 계책’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몸을 상해가면서 까지 꾸며내는 계책이라는 뜻인 ‘고육지책’과는 구별된다.
1. 그는 사업 비용을 조달할 길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집을 팔기로 했다.
호구지책에서 ‘호구(糊口)’란 ‘입에 풀칠을 하다’라는 뜻으로,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방책(方策)을 뜻한다.
1. 호구지책을 마련하다.
2. 원고지 한 장에 겨우 기백 환을 받아서 근근이 호구지책을 세워 가고 있는 우리네의 형편에 무슨 여유가 있다고…. (정비석. 비석과 금강산의 대화)
3. 남의 글 옮겨 갖고 호구지책을 강구(講究)하는 주제에 생일잔치가 지나치게 성대하면 되레 웃음거리가 될 텐데. (이병주. 행복어 사전)
酒逢知己千杯小, 話不投機半句多.
지기를 만나면 천 잔의 술도 적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반 마디도 말도 많다. – 구양수
지기知己는 자신의 마음까지도 알아주는 친구이다. 그런 반가운 이를 만나면 천 잔의 술도 적지만, 마음 맞지 않는 사람과는 반 마디 말도 나누기 싫다는 뜻이다. 세상에 아는 사람은 많다. sns로 아는 친구는 수 십명을 훌쩍 넘는다. 명심보감 교우편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친구가 수천이 넘어도 마음 속 허전함이 솟아오르는 까닭이다.
네 가지가 알고 있다는 뜻으로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말이다.
후한서에 보인다. 중국 한나라 때 양진이 동래 태수로 임명 되었을 무렵, 창읍의 현령 왕밀이 찾아와 황금 열 근을 바쳤다. 왕밀은 예전에 양진의 추천을 받아 벼슬을 얻은 사람이다. 양진이 말했다.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걸 잊었는가?” 왕밀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허물없는 옛정으로 올리는 것이고,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모를것입니다.”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고地知, 그대가 알고子知, 내가 아네我知.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 하는가?” 하니 왕밀이 부끄러워하며 나갔다고 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아무도 모르게 행한 일이라도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흔히 높은 곳에 이르려 한다. 그러나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함을 모른다.
人多要至高處, 不知自底處. – 주자
명분이 바르지 아니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로야, 참으로 비루하고 속되구나. 군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에는 항상 의심을 품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아 합리적이지 못하며 말이 합리적이지 못하면 일을 이룰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