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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가 말씀하였다.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물으며, 학식이 많으면서 적은 이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가득해도 빈 것처럼 하며,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여도 따지지 않는 것을, 옛적에 내 벗(안연)이 일찍이 이런 일을 실천하였다.(以能問於不能하며 以多問於寡하며 有若無하며 實若虛하며 犯而不校를 昔者에 吾友嘗從事於斯矣러니라)”

– 논어.태백.5장

증자가 병환이 있자, 맹경자가 문병을 왔다. 증자가 말씀하였다.

“새가 장차 죽을 때에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장차 죽을 때에는 그 말이 착한 법이다. 군자가 귀중히 여기는 도가 세 가지 있으니, 용모를 움직일 때에는 사나움과 태만함을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로잡을 때에는 성실함에 가깝게 하며, 말과 소리를 낼 때에는 비루 함과 도리에 위배되는 것을 멀리하여야 한다. 제기(祭器)를 다루는 등의 (소소한) 일은 유사(有司-담당자)가 있어 하는 것이다.”(鳥之將死에 其鳴也哀하고 人之將死에 其言也善이니라. 君子所貴乎道者三이니 動容貌에 斯遠暴慢矣며 正顔色에 斯近信矣며 出辭氣에 斯遠鄙倍矣니 籩豆之事則有司存이니라.)

– 논어.태백.4장

증자가 병이 위중하자,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였다.

“<이불을 걷고> 나의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전전(戰戰)하고 긍긍(兢兢)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하였으니, 이제서야 나는 <이 몸을 훼상시킬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구나, 소자(小子-제자)들아!(啓予足하며 啓予手하라 詩云 戰戰兢兢하여 如臨深淵하며 如履薄氷이라하니 而今而後에야 吾知免夫로라 小子아)”

– 논어.태백.3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손하되 예(禮)가 없으면 수고롭고, 삼가되 예(禮)가 없으면 두렵고, 용맹스럽되 예(禮)가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강직하되 예(禮)가 없으면 너무 각박해지게 된다. 군자(君子-爲政者)가 친척에게 후하게 하면 백성들이 인(仁)에 흥기하고,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야박해지지 않는다.”(恭而無禮則勞하고 愼而無禮則葸하고 勇而無禮則亂하고 直而無禮則絞니라. 君子篤於親이면 則民興於仁하고 故舊不遺면 則民不偸니라)”

– 논어.태백.2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백(泰伯)은 지극한 덕이 있다고 이를 만하다. 세 번 천하를 사양하였으나 백성들이 그 덕을 칭송할 수 없게 하였구나!(泰伯은 其可謂至德也已矣로다 三以天下讓하되 民無得而稱焉이온여)”

– 논어.태백.1장

공자께서 병환이 위중하시자, 자로가 신에게 기도할 것을 청하였다. 공자께서

“이런 이치가 있는가?(有諸아)”

하고 묻자, 자로가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뇌문(誄文)에 ‘너를 상하의 신(神)에게 기도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有諸아 子路對曰 有之하니 誄曰 禱爾于上下神祇라)”

하였다. 공자께서

“나는 기도한 지가 오래이다.(丘之禱久矣니라)”

하셨다. – 논어.술이.34장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성(聖)과 인(仁)으로 말하면 내 어찌 감히 자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행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若聖與仁은 則吾豈敢이리오 抑爲之不厭하며 誨人不倦은 則可謂云爾已矣니라)”

하셨다. 공서화가 말하였다.

“바로 이것이 저희 제자들이 배울 수 없는 점입니다.(正唯弟子不能學也로소이다)”

– 논어.술이.3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