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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연(顔淵)과 계로(季路)가 공자를 모시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어찌 각기 너희들의 뜻을 말하지 않는가?(盍各言爾志오)”

하셨다.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수레와 말과 가벼운 갖옷을 친구와 함께 쓰다가 해지더라도 유감이 없고자 하옵니다.(願車馬衣輕裘를 與朋友共하여 敝之而無憾하노이다)”

안연(顔淵)이 말하였다.

“자신의 잘하는 것을 자랑함이 없으며, 공로를 과시함이 없고자 하옵니다.(願無伐善하며 無施勞하노이다)”

자로(子路)가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하옵니다.(願聞子之志하노이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늙은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붕우(朋友)에게는 미덥게 해주고, 젊은이를 감싸주고자 한다.(老者安之하며 朋友信之하며 少者懷之니라)”

– 논어.공야장.25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고 공손을 지나치게 함을 옛날 좌구명(左丘明)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러워하노라. 원망을 감추고 그 사람과 사귐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러워하노라.(巧言令色足恭을 左丘明恥之러니 丘亦恥之하노라 匿怨而友其人을 左丘明恥之러니 丘亦恥之하노라)”

– 논어.공야장.24장

공자께서 진(陳)나라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오당(吾黨)의 소자(小子)들이 뜻은 크나 일에는 소략하여 찬란하게 문장(文章)을 이루었을 뿐이요. 그것을 마름질할 줄을 모르는구나.(歸與歸與인저 吾黨之小子狂簡하여 斐然成章이요 不知所以裁之로다)”

– 논어.공야장.21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에는 지혜롭고,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에는 어리석었으니, 그 지혜는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甯武子邦有道則知하고 邦無道則愚하니 其知는 可及也어니와 其愚는 不可及也니라)”

– 논어.공야장.20장

자장이 묻기를

“영윤(令尹)인 자문(子文)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이 되었으되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면서도 서운해 하는 기색이 없어서 옛날 자신이 맡아보던 영윤의 정사를 반드시 새로 부임해온 영윤에게 알려주었으니, 어떻습니까?(令尹子文이 三仕爲令尹하되 無喜色하며 三已之하되 無慍色하여 舊令尹之政을 必以告新令尹하니 何如하니잇고)”

하자, 공자께서

“충성스럽다.(忠矣니라)”

라고 대답하셨다.

“인(仁)이라고 할 만합니까?(仁矣乎잇가)”

하고 다시 묻자,

“모르겠다. 어찌 인(仁)이 될 수 있겠는가.(未知로다 焉得仁이리오)”

하셨다.

“최자(崔子)가 제나라 임금을 시해하자, 진문자는 말 10승(乘)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버리고 그 곳을 떠나 다른 나라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 사람도 우리나라 대부(大夫) 최자와 같다.’하고 그 곳을 떠났으며, 또 한 나라에 이르러서도 또 말하기를 ‘이 사람 역시 우리나라 대부 최자와 같다.’하고 떠나갔으니, 어떻습니까?(崔子弑齊君이어늘 陳文子有馬十乘이러니 棄而違之하고 至於他邦하여 則曰 猶吾大夫崔子也라하고 違之하며 之一邦하여 則又曰 猶吾大夫崔子也라하고 違之하니 何如하니잇고)”

하고 묻자, 공자께서

“청백하다.(淸矣니라)”

하고 대답하셨다.

“인(仁)이라고 할 만합니까?(仁矣乎잇가)”

하고 다시 묻자,

“모르겠다. 어찌 인(仁)이 될 수 있겠는가.(未知로라 焉得仁이리오)”

하셨다. – 논어.공야장.18장

고기를 잡으면 고기를 잡던 통발은 잊는다는 말로, 뜻을 이루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한 수단은 버리게 된다는 뜻.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고 만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는 도구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어버리고 만다. 이처럼 말이란 마음속에 가진 뜻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뜻을 얻으면 말은 잊어버리고 만다. 뜻을 얻고 말을 잊어버린 사람과 말하고 싶구나.

– 장자.외물편

위의 글에서 통발, 올가미, 말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을 말하며, 따라서 득어망전의 본 의미는 진리에 도달하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수단을 버릴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처럼 ‘배은망덕(背恩忘德)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