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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글 태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인(仁)을 좋아하는 자와 불인(不仁)을 미워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인(仁)을 좋아하는 자는 그보다 더할 수 없고, 불인(不仁)을 싫어하는 자는 그가 인(仁)을 행할 때에 불인(不仁)한 것으로 하여금 그 몸에 가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루라도 그 힘을 인(仁)에 쓴 자가 있는가? 나는 힘이 부족한 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노라. 아마도 그런 사람이 있을 터인데 내가 아직 보지 못하였나보다.(我未見好仁者와 惡不仁者로라 好仁者는 無以尙之요 惡不仁者는 其爲仁矣에 不使不仁者加乎其身이니라 有能一日用其力於仁矣乎아 我未見力不足者로라 蓋有之矣어늘 我未之見也로다)”

– 논어.이인.6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富)와 귀(貴)는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나 그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으면 처하지 않아야 하며, 빈(貧)과 천(賤)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그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았다 하더라도 버리지 않아야 한다.군자(君子)가 인(仁)을 떠나면 어찌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군자(君子)는 밥을 먹는 동안이라도 인(仁)을 떠남이 없으니, 경황 중에도 이 인(仁)에 반드시 하며, 위급한 상황에도 이 인(仁)에 반드시 하는 것이다.(富與貴是人之所欲也나 不以其道得之어든 不處也하며 貧與賤是人之所惡也나 不以其道得之라도 不去也니라 君子去仁이면 惡乎成名이리오 君子無終食之間違仁이니 造次에 必於是하며 顚沛에 必於是니라)”

– 논어.이인.5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하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궁한 데 처할 수 없으며 장구하게 즐거움에 처할 수 없으니, 인자(仁者)는 인(仁)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智者)는 인(仁)을 이롭게 여긴다.(不仁者는 不可以久處約이며 不可以長處樂이니 仁者는 安仁하고 知者는 利仁이니라)”

– 논어.이인.2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의 <인심이> 인후(仁厚)한 것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인(仁)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혜롭다 하겠는가.(里仁이 爲美하니 擇不處仁이면 焉得知리오)”

– 논어.이인.1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으며, 예(禮)를 행함에 공경하지 않으며, 초상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관찰하겠는가?(居上不寬하며 爲禮不敬하며 臨喪不哀면 吾何以觀之哉리오)”

– 논어.팔일.26장

공자께서 소악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좋다.(盡美矣요 又盡善也라)”

하셨으며, 무악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못하다.(盡美矣요 未盡善也라)”

하셨다.
– 논어.팔일.25장

의땅의 봉인이 뵙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이곳에 이르면 내 일찍이 만나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君子之至於斯也에 吾未嘗不得見也로라)”

하였다. 종자(從者)가 뵙게 해주자, <그가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공자께서> 벼슬을 잃음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천하에 도(道)가 없는 지 오래되었다. 하늘이 장차 부자(夫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二三子는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久矣라 天將以夫子爲木鐸이시리라)”

– 논어.팔일.2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