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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일"의 글 태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을 쏘는데 가죽 뚫는 것을 주장하지 않음은 힘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니, 옛날의 <활 쏘는> 도(道)이다.(射不主皮는 爲力不同科니 古之道也니라)”

– 논어.팔일.16장

공자께서 태묘(大廟)에 들어가 매사(每事)를 물으시니, 혹자가 말하기를

“누가 추땅 사람의 아들(공자)을 일러 예(禮)를 안다고 하는가? 태묘(大廟)에 들어가 매사(每事)를 묻는구나!(孰謂鄹人之子知禮乎아 入太廟하야 每事問이온여)”

하였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것이 바로 예(禮)이다.(是禮也니라)”

라고 하셨다.
– 논어.팔일.15장

왕손가가 물었다.
“아랫목 신(神)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부엌 신(神)에게 잘 보이라 하니, 무슨 말입니까?(與其媚於奧론 寧媚於竈라하니 何謂也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不然하다 獲罪於天이면 無所禱也니라)”
– 논어.팔일.13장

제사를 지내실 적에는 <선조(先祖)가> 계신 듯이 하셨으며, 신(神)을 제사지낼 적에는 신(神)이 계신 듯이 하셨다.(祭如在하시며 祭神如神在러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마치 제사하지 않은 것과 같다.(吾不與祭면 如不祭니라)”

– 논어.팔일.12장

혹자가 체제사의 내용을 묻자, 공자께서
“알지 못하겠다. 그 내용을 아는 자는 천하(天下)를 다스림에 있어 여기에다 올려놓고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不知也로라 知其說者之於天下也에 其如示諸斯乎인저)”
하시고, 그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 논어.팔일.11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夏)나라의 예(禮)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기(杞)나라에서 충분히 증거를 대주지 못하며, 은(殷)나라의 예(禮)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송(宋)나라에서 충분히 증거를 대주지 못함은 문헌(文獻)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헌(文獻)이> 충분하다면 내가 <내 말을> 증거댈 수 있을 것이다.(夏禮를 吾能言之나 杞不足徵也며 殷禮를 吾能言之나 宋不足徵也는 文獻不足故也니 足則吾能徵之矣로리라)”

– 논어.팔일.9장

자하가 물었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 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巧笑倩兮며 美目盼兮여 素以爲絢兮라하니 何謂也잇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繪事後素니라)”

(자하가)

“예(禮)가 (忠信보다) 뒤이겠군요?(禮後乎인저)”

하고 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흥기(興起)시키는 자는 상(商-자하)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詩)를 말한 만하다.(起予者는 商也로다 始可與言詩已矣로다)”

– 논어.팔일.8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다투는 것이 없으나, 반드시 활쏘기에서는 경쟁을 한다. 상대방에게 읍(揖)하고 사양하며 올라갔다가 (활을 쏜 뒤에는) 내려와 (술을) 마시니, 이러한 다툼이 군자다운 다툼이다.(君子無所爭이나 必也射乎인저 揖讓而升하여 下而飮하나니 其爭也君子니라.)”

– 논어.팔일.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