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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야"의 글 태그

백우가 병을 앓자, 공자께서 문병하실 적에 남쪽 창문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운명인가보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亡之러니 命矣夫인저 斯人也而有斯疾也할새 斯人也而有斯疾也할새)”

– 논어.옹야.8장

계씨가 민자건을 비읍의 읍재로 삼으려 하자, 민자건이 <사자(使者)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잘 말하여다오. 만일 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노(魯)나라를 떠나 제(齊)나라의> 문(汶)수가에 있겠다.(善爲我辭焉하라 如有復我者면 則吾必在汶上矣로리라)”

하셨다. – 논어.옹야.7장

계강자가 물었다. “중유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由)는 과단성이 있으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由也果하니 於從政乎에 何有리오)”

“사(賜-자공)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하고 물으니,

“사(賜)는 사리에 통달했으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賜也可使從政也與잇가)”

하셨다. “염구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하고 물으니,

“구(求)는 다재다능하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求也藝하니 於從政乎에 何有리오)”

하셨다. – 논어.옹야.6장

공자께서 중궁을 논평하여 말씀하셨다.

“얼룩소 새끼가 색깔이 붉고 또 뿔이 제대로 났다면 비록 쓰지 않고자 하나 산천(山川)의 신(神)이야 어찌 그것을 버리겠는가?(犁牛之子騂且角이면 雖欲勿用이나 山川其舍諸아)”

– 논어.옹야.4장

자화가 <공자를 위하여> 제나라에 심부름을 가자, 염자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줄 것을 요청하니, 공자께서

“부(釜)를 주어라.(與之釜하라)”

하셨다. 더 줄 것을 요청하자, 공자께서

“유(庾)를 주어라.(與之庾하라)”

하셨는데, 이보다 많은 5병(秉)을 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적(赤-자화)이 제나라에 갈 때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궁박(窮迫)한 자를 돌봐주고 부유(富裕)한 자를 계속 대주지 않는다.’하였다.(赤之適齊也에 乘肥馬하며 衣輕裘하니 吾聞之也하니 君子는 周急이요 不繼富라호라)”

원사가 <공자의> 가신(宰)이 되었는데, <공자께서> 곡식 9백을 주자, 사양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사양하지 말고 너의 이웃집과 마을 및 향당에 주려무나!(毋하여 以與爾隣里鄕黨乎인저)”

– 논어.옹야.3장

애공이

“제자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弟子孰爲好學이니잇고)”

하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안회라는 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없으니, 아직 학문을 좋아한다는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有顔回者好學하여 不遷怒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라 今也則亡『(無)』하니 未聞好學者也니이다)”

– 논어.옹야.2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雍-중궁)은 남면(南面-군왕의 자리에 앉음)하게 할 만하다.(雍也는 可使南面이로다)”

중궁(仲弓)이 자상백자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의 간략함도 괜찮다.(可也簡이니라)”

중궁(仲弓)이 말하였다.

“자신이 경(敬)에 처해 있으면서 간략함을 행하여 인민(人民)을 대한다면 가(可)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간략함에 처하고 다시 간략함을 행한다면 너무 간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居敬而行簡하여 以臨其民이면 不亦可乎잇가 居簡而行簡이면 無乃大『(太)』簡乎잇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雍)의 말이 옳다.(雍之言이 然하다)”

– 논어.옹야.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