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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의 글 태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되 일을 공경하고 믿게 하며, (재물) 쓰기를 절도 있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리기를 때에 맞게 하여야 한다.(道千乘之國하되 敬事而信하며 節用而愛人하며 使民以時니라.)”

하였다. – 논어.학이.5장

증자가 말하길,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피나니,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해 줌에 충성스럽지 못한가? 친구와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지 못한가? 전수(傳受)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는가? 이다.(吾日三省吾身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아 與朋友交而不信乎아 傳不習乎이니라.)”

하였다. – 논어.학이.4장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보태다. 장점이나 넉넉한 것으로 단점이나 부족한 것을 補充(보충)함.

등문공이 세자가 되어 초나라로 가면서 송나라를 들러 맹자를 만났다. 맹자가 성선(性善)을 이야기 하며 꼭 요순(堯舜)을 말했다.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갈 때 다시 맹자를 만나니, 맹자가 말하길,

“세자께서는 내 말을 의심하십니까? 무릇 도는 하나일 뿐으로, 사람은 모두 본성(本性)이 선(善)하니, 누구든 의지만 있다면 요순처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등나라는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에 보태면(絶長補短) 사방이 오십 리니 아직도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하였다. – 맹자.등문공장구상.1장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순서와 단계가 있음을 뜻하는 한자성어.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길을 가는데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비롯하는 것과 같으며, 비유컨대 높은 곳을 오르는데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비롯하는 것과 같다.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 중용

겉뜻 : 호랑이를 길러 근심을 남김.
속뜻 : 스스로 화를 자초함.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 도리어 해를 입음.

진나라 말기 유방과 항우가 천하의 패권(霸權)을 다툴 때, 유방이 대군을 이끌고 먼저 함양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방보다 세가 뛰어난 항우가 뒤이어 함양에 오자 유방은 뒷날을 기약하며 항우에게 항복하고 한중 방면으로 물러났다. 훗날 유방이 군사력이 항우보다 우세하게 되자, 항우에게 사진을 보내어 평화조약을 맺으려 했다. 항우는 자기가 열세임을 깨닫고 조약을 맺으려 하였으나, 유방의 지장(智將) 장량은 “공께서는 지금 천하의 땅 중에서 태반이나 차지하고 있으며, 제후들도 모두 공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항우는 지지하는 사람이 없어 고립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때에 항우를 멸하지 않는다면 이는 호랑이를 기르는 결과가 되어 뒷날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유방은 장량의 말이 옳다고 여겨 군사를 이끌고 가서 항우를 쳤다고 한다. – 사기

나무를 옮겨 신용(信用)을 얻었다는 뜻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과의 약속(約束)을 지켜야 한다는 말.

중국 진(秦)나라의 상앙(商鞅)이 법령을 개정하려 할 때, 백성들이 법을 잘 따르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세 길 쯤 되는 큰 나무를 수도(首都) 남문에 세우고 북문으로 옮기는 백성에게 십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나서서 옮기려 하지 않았다. 상앙은 다시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한테 오십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마침내 어느 사람이 기둥을 북문으로 옮겼다. 상앙은 즉시 그 남자에게 오십금을 내주었다. 이렇게 하여 백성이 법이 반드시 지켜진다는 사실을 알게 한 다음 법령을 개정하고 공포(公布)하였다.

겉뜻 :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듦.
속뜻 : 거짓말이라도 여러사람이 말하면 믿기 쉬움.

위나라의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던 신하 방공은 위나라의 태자와 함께 조나라의 한단으로 인질의 신분으로 가게 되자, 방공은 다른 신하들이 총애를 받던 자신을 헐뜯을 것이 두려워 왕에게 질문을 하나 합니다.
“한 사람이 번화한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 두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있다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 세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있다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하길 “만일 세 사람이 말한다면 믿을 것 같소.”
그러자 방공은,
“무릇 번화한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없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모두 같은 말을 한다면 없는 호랑이도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가려는 한단은 위나라의 저잣거리 보다 멀고, 이러쿵저러쿵 제 얘기를 할 사람은 세 사람 보다 많을 것이니, 원컨대 왕께서는 다른 신하의 말을 잘 살피고 신을 헐뜯는 말을 믿지 마시길 바랍니다.”
왕은 알겠노라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방공이 한단에서 돌아왔을 때, 끝내 왕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 한비자<내저설>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 여몽은 많은 공을 세워 장군이 되었으나, 학식이 부족하여 여러 관료들은 그를 경시하였다. 그러나 오나라 황제 손권은 여몽을 높이 평가하여 군의 대권을 그에게 맡기고자 하며 책 읽을 것을 권하여 말했다.
“너는 이제 군의 대권을 맡게 되었으니, 마땅히 많은 사서(史書)와 병서(兵書)를 읽어야만 일을 잘 처리할 수가 있다.”
여몽은 “부대의 일이 많으니 독서할 시간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손권은 그를 꾸짖으며 말하길,
“후한의 황제 광무제(光武帝)는 변방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手不釋卷), 위나라의 조조(曹操)는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여몽은 부끄러워하며 이 후, 전쟁터에서도 책을 놓지 않고 학문에 정진했다.
그 뒤 손권의 부하 노숙(魯肅)이 옛 친구인 여몽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다가 박식해진 여몽을 보고 놀랐다. 노숙이 여몽에게 언제 그만큼 많은 공부를 했는지 묻자, 여몽은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刮目相對)”라고 말하였다. – 삼국지

전전(戰戰)은 겁을 먹고 벌벌 떠는 모양. 긍긍(兢兢)은 조심해 몸을 움츠리는 모양으로 어떤 위기감에 떠는 심정(心情)을 비유(譬喩)한 말

서주(西周) 말엽, 군주에 의하여 법도를 무시한 정치가 제멋대로 행해짐을 신하가 한탄한 말로 시경에 보인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 없고, 걸어서는 황하를 건널 수 없네. 사람들이 그 한 가지만 알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네. 생각하면 언제나 벌벌 떨면서, 깊고 깊은 못 가에 임하는 심정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듯하네. (不敢暴虎, 不敢馮河. 人知其一, 莫知其他.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 시경.소아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