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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글 태그

제나라의 대신 심동이라는 자가 맹자에게 연(燕)나라를 정벌해도 되는지 묻자, 맹자는 된다고 대답하였다. 후에 누군가 맹자에게 제(齊)나라에게 연나라 정벌(征伐)을 권했다고 하는데 맞는지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심동이 연나라를 정벌해도 되겠습니까?’하고 묻길래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일 ‘누가 정벌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면, 나는 ‘천리만이 정벌할 수 있습니다(爲天吏, 則可以伐之).’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지금 제나라가 무도하기가 연나라와 같은데 정벌하는 것을 어찌 권했겠습니까?”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8장
천리(天吏)는 공손추장구상5에 보인다. https://haesol-memo.com/천하에-적이-없는-자는-하늘이-내린-벼슬아치이다/

맹자가 제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도중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노나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르고 제나라로 돌아왔다. 맹자의 제자 충우가 ‘어머니 장례에 쓰인 관곽의 나무가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니 맹자가 대답하길,

“옛날에는 관곽에 법도가 없었지만, 중고(中古)시대에 관은 일곱 치, 곽은 그에 알맞게 하도록 했다. 이것은 단지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사람의 마음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이 허용하고 재력이 있으면 옛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했으니 어찌 나만 홀로 그렇게 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군자로부터 듣기로는 천하 때문에 그 어버이에게 검소하게 하지 않는다 했다.(吾聞之君子 不以天下儉其親).”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7장

맹자가 제나라에서 경이 되어 등나라로 조문을 가는데, 왕이 제나라의 읍 합의 대부 왕환으로 하여금 부사로 따라가게 했다. 맹자는 왕환을 아침저녁으로 만났으나 그와 행사에 대해 한마디도 이야기 하지 않으니 공손추가 어찌된 까닭인지 물었다. 맹자가 대답하길,

“그가 이미 일을 다 처리하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夫旣或治之, 予何言哉)?”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6장

夫는 왕환, 或은 有.

맹자가 말하길,

“나는 ‘관직을 맡은 자는 그 직을 수행할 수 없으면 그만두며, 간언을 맡은 자는 말을 할 수 없으면 그만둔다(有官守者, 不得其職則去. 有言責者, 不得其言則去).’ 들었다. 나는 관직도 없고 간언을 맡지도 않았으니 나아가고 물러남을 어찌 여유 있게 하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5장

맹자가 제나라의 읍 평륙에 가서, 그 곳의 대부에게 ‘평륙의 늙고 허약한 백성들이 흉년에 굶주려 죽어 그 시체가 도랑에 굴러다니고, 건장한 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것은 누구의 허물입니까?’하고 물으니, 대부가 대답하길 ‘그것은 왕이 그렇게 한 것이지 저의 죄가 아닙니다.’하니, ‘남의 소와 양을 맡아 기르는 자는 반드시 주인을 대신해 방목지와 꼴을 구해야 합니다. 만약 방목지와 꼴을 구할 수 없다면 소와 양을 그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까(求牧與芻而不得, 則反諸其人乎?)? 아니면 가만히 서서 죽는 것을 지켜보아야 합니까?’ 하니 대부가 ‘저의 죄가 맞습니다.’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4장

진진이 맹자에게 ‘제나라에서는 왕이 금 백일을 주었으나 받지 않으셨는데, 이번에 송나라에서 금 칠십일을 주었는데 받으셨고, 설나라에서 오십일을 주었는데 받으셨습니다. 어찌된 까닭입니까?’하고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길,

“송나라에서는 내가 장차 멀리 갈 일이 있었는데 노잣돈을 드린다 하였으니 받았고, 설나라에서는 내가 조심할 일이 있어 병사를 거느려야 했기에 받았다. 그러나 제나라에서는 쓸 일이 없으므로 받지 않은 것이다. 쓸 일이 없는데도 주는 것은 뇌물이 되니, 어찌 군자가 어찌 뇌물에 매수되겠는가(無處而餽之, 是貨之也. 焉有君子而可以貨取乎)?”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3장

맹자가 말하길,

“천하에 두루 존중받는 것이 셋이 있으니, 작위(爵位), 나이, 덕입니다. 조정에서는 작위만한 것이 없고, 향리(鄕里)에서는 나이만한 것이 없으며,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는 덕(德)만한 것이 없습니다.
장차 큰일을 할 임금은 덕이 있는 신하는 오라 가라 하지 않고,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갔습니다. 그 덕을 존중함이 이와 같아야 족히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탕왕은 이윤으로부터 먼저 배운 후 그를 신하로 삼아 힘들이지 않고 왕이 되었으며, 환공은 관중으로부터 먼저 배운 후 그를 신하로 삼아 힘들이지 않고 패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임금은 자기가 가르치는 사람을 신하로 삼길 좋아하며, 자기가 가르침을 받을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好臣其所敎 而不好臣其所受敎).”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하.2장

맹자가 말하길,

“백이는 바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악한 사람의 조정(朝廷)에 서거나 더불어 말하는 것을 마치 진흙구덩이에 앉아 있는 것처럼 여겼다. 유하혜는 악한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반드시 올바르게 일했다. 벼슬에서 쫓겨나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궁해도 근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하혜는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느냐?’했다. 백이는 도량(度量)이 좁고 유하혜는 공손(恭遜)하지 못한 것이니 모두 군자가 따를 바는 아니다.”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상.9장

맹자가 말하길,

“자로는 남이 자신의 잘못을 알려주면 기뻐했으며, 우임금은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했다. 순임금은 더욱 훌륭했으니, 착한 일을 남과 더불어 하고 자기의 잘못을 버리고 남의 착한 행실을 따랐다(舍己從人). 군자에게는 남과 더불어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다.”

하였다. – 맹자.공손추장구상.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