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가 부자와 사귈 적에 강한 자는 반드시 <부자를> 해치고, 약한 자는 반드시 탐한다.(貧與富交에 彊者必忮하고 弱者必求니라)”
– 논어.자한.26장.여씨
“가난한 자가 부자와 사귈 적에 강한 자는 반드시 <부자를> 해치고, 약한 자는 반드시 탐한다.(貧與富交에 彊者必忮하고 弱者必求니라)”
– 논어.자한.26장.여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군(三軍)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으나, 필부(匹夫)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三軍은 可奪帥也어니와 匹夫는 不可奪志也니라)”
– 논어.자한.25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신(忠信)을 주장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벗 삼으려 하지 말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主忠信하며 毋友不如己者요 過則勿憚改니라)”
– 논어.자한.24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르게 해주는 말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잘못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완곡하게 해주는 말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뻐하기만 하고 실마리를 찾지 않으며, 따르기만 하고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내 그를 어찌 할 수가 없다.(法語之言은 能無從乎아 改之爲貴니라 巽與之言은 能無說乎아 繹之爲貴니라 說而不繹하며 從而不改면 吾末如之何也已矣니라)”
– 논어.자한.23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후생(後生)이 두려울 만하니 앞으로 오는 자(後生)들이 나의 지금보다 못할 줄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40∼50세가 되어도 알려짐이 없으면 그 또한 족히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後生可畏니 焉知來者之不如今也리오 四十五十而無聞焉이면 斯亦不足畏也已니라)”
– 논어.자한.22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싹이 났으나 꽃이 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苗而不秀者有矣夫며 秀而不實者有矣夫인저)”
– 논어.자한.21장
공자께서 안연을 두고 평하셨다.
“애석하구나, <그의 죽음이여!> 나는 그가 전진하는 것만을 보았고 중지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惜乎라 吾見其進也요 未見其止也로라)”
– 논어.자한.20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를> 말해주면 게을리 하지 않는 자는 그 안회일 것이다.(語之而不惰者는 其回也與인저)”
– 논어.자한.19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문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 것과 같으니, 산을 쌓을 때에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쏟아 붓지 않아, 산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그만 두는 것도 내가 그만 두는 것이며. (학문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땅을 고르는 것과 같으니, 땅을 고를 때에 흙 한 삼태기를 쏟아 부어 시작하는 것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譬如爲山에 未成一簣하여 止도 吾止也며 譬如平地에 雖覆一簣나 進도 吾往也니라)”
– 논어.자한.18장
진(秦) 무왕(武王)은 나라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점차 자만심에 빠지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한 신하가 무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경에 ‘처음은 누구나 잘하지만 끝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은 적다(靡不有初 鮮克有終)’는 말이 있습니다. 선왕들은 시작과 끝을 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역사에는 처음에는 잘하다가도 끝마무리를 잘하지 못해 멸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대왕은 의양에서 승리하고 삼천 일대를 점령하면서 제후들로 하여금 감히 대항하지 못하게 하였고, 한(韓)과 초(楚) 두 나라의 군사들이 감히 진격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만일 대왕이 마무리만 잘하면 삼왕과 더불어 나란히 사왕으로 칭송되고, 오백(五伯-춘추 오패)이 육백(六伯)으로 되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멸망의 화를 입을 것입니다. 신(臣)은 제후(諸侯)들과 선비들이 장차 대왕을 오왕(吳王) 부차(夫差)나 지백(智伯) 요(瑤)처럼 여기게 될까 두렵습니다. 시경에서는 ‘1백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여긴다(行百里者 半於九十)’고 했습니다. 이는 마무리의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
– <전국책> 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