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태묘(大廟)에 들어가 매사(每事)를 물으시니, 혹자가 말하기를
“누가 추땅 사람의 아들(공자)을 일러 예(禮)를 안다고 하는가? 태묘(大廟)에 들어가 매사(每事)를 묻는구나!(孰謂鄹人之子知禮乎아 入太廟하야 每事問이온여)”
하였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것이 바로 예(禮)이다.(是禮也니라)”
라고 하셨다.
– 논어.팔일.15장
공자께서 태묘(大廟)에 들어가 매사(每事)를 물으시니, 혹자가 말하기를
“누가 추땅 사람의 아들(공자)을 일러 예(禮)를 안다고 하는가? 태묘(大廟)에 들어가 매사(每事)를 묻는구나!(孰謂鄹人之子知禮乎아 入太廟하야 每事問이온여)”
하였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것이 바로 예(禮)이다.(是禮也니라)”
라고 하셨다.
– 논어.팔일.15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周)나라는 하(夏)•은(殷) 이대(二代)를 보았으니, 찬란하다. 그 문(文)이여! 나는 주(周)나라를 따르겠다.(周監於二代하니 郁郁乎文哉라 吾從周하리라.)”
– 논어.팔일.14장
왕손가가 물었다.
“아랫목 신(神)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부엌 신(神)에게 잘 보이라 하니, 무슨 말입니까?(與其媚於奧론 寧媚於竈라하니 何謂也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不然하다 獲罪於天이면 無所禱也니라)”
– 논어.팔일.13장
동화 구연(口演) 대회(大會)를 열다.
노조(勞組)는 파업을 결정(決定)했다.
건전(健全)한 서평문화(書評文化)를 정착(定着)시키다.
제사를 지내실 적에는 <선조(先祖)가> 계신 듯이 하셨으며, 신(神)을 제사지낼 적에는 신(神)이 계신 듯이 하셨다.(祭如在하시며 祭神如神在러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마치 제사하지 않은 것과 같다.(吾不與祭면 如不祭니라)”
– 논어.팔일.12장
혹자가 체제사의 내용을 묻자, 공자께서
“알지 못하겠다. 그 내용을 아는 자는 천하(天下)를 다스림에 있어 여기에다 올려놓고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不知也로라 知其說者之於天下也에 其如示諸斯乎인저)”
하시고, 그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 논어.팔일.11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체제사는 강신주(降神酒)를 따른 뒤로부터는 내 보고 싶지 않다.(禘自旣灌而往者론 吾不欲觀之矣로라)”
– 논어.팔일.10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夏)나라의 예(禮)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기(杞)나라에서 충분히 증거를 대주지 못하며, 은(殷)나라의 예(禮)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송(宋)나라에서 충분히 증거를 대주지 못함은 문헌(文獻)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헌(文獻)이> 충분하다면 내가 <내 말을> 증거댈 수 있을 것이다.(夏禮를 吾能言之나 杞不足徵也며 殷禮를 吾能言之나 宋不足徵也는 文獻不足故也니 足則吾能徵之矣로리라)”
– 논어.팔일.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