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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월" 글 보관함

자하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 (부형父兄 에게) 일이 있으면 제자(弟子)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선생(부형父兄)을 드시게 하는 것을 일찍이 효(孝)라고 할 수 있겠는가?(色難이니 有事어든 弟子服其勞하고 有酒食(사)어든 先生饌이 曾是以爲孝乎아)”

– 논어.위정.8장

자유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견마(犬馬)에게도 모두 길러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 논어.위정.7장

맹의자가 효(孝)를 묻자, 공자께서

“어김이 없어야 한다.(無違니라.)”

고 대답하셨다.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손씨가 나에게 효를 묻기에 나는 어김이 없으라고 대답하였다.(孟孫이 問孝於我어늘 我對曰 無違라호라)”

번지가

“무엇을 이르신 것입니까?(何謂也니잇고)”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 계시면 예(禮)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禮)로 장사지내고, 예(禮)로 제사지내는 것이다.(生事之以禮하며 死葬之以禮하며 祭之以禮니라)”

– 논어.위정.5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學問)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自立)하였고, 마흔 살에 사리(事理)에 의혹(疑惑)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天命)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法度)에 넘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되 不踰矩호라.)”

– 논어.위정.4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도(引導)하기를 법(法)으로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형벌(刑罰)로 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免)할 수는 있으나, 부끄러워함은 없을 것이다. 인도(引導)하기를 덕(德)으로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예(禮)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함이 있고, 또 선(善)에 이르게 될 것이다.(道之以政하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恥니라. 道之以德하고 齊之以禮면 有恥且格이니라. )”

– 논어.위정.3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詩經) 3백 편의 뜻을 한 마디의 말로 대표할 수 있으니,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말이다.(道之以政하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恥니라.)”

– 논어.위정.2장

신농씨의 말을 실천하는 허행이라는 사람이 등나라에 있었는데, 유가(儒家)를 배웠던 진상이라는 자가 그 동안 배운 것을 버리고 허행을 따랐다. 진상이 맹자를 만나 등나라 임금은 현명하나 백성과 함께 농사를 짓지 않으니 아직 도를 듣지 못한 것이라 말했다. 맹자가 진상에게 허행은 농사는 손수 지으면서 어찌하여 손수 길쌈은 하지 않고 쟁기는 만들지 않냐 물으니 진상이 농사지으면서 여러 장인들의 일은 같이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길,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은 유독 농사지으면서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떤 사람은 정신을 쓰고 어떤 사람은 육체를 쓰는데, 정신을 쓰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육체를 쓰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다스림을 받는다. 남으로부터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남을 먹여 살리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얻어먹는다.(或勞心, 或勞力.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天下之通義也.)’는 말이 있으니 천하의 공통된 원칙입니다.”

하였다. – 맹자.등문공장구상.4장